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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정부개입 정당한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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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정부개입 정당한가(포럼)

입력
199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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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는 얼마나 자유로워야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은 정당한 것인가」경제학의 오랜 「화두」인 이 주제를 놓고 최근 학계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전개돼왔다. 전경련이 설립한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과 경상대 장상환 교수가 한 출판잡지를 통해 벌여온 논쟁이 그것이다. 우리경제 방향에 대해 근본적 시각을 달리하는 두 사람의 논쟁을 정리해본다.<편집자 주>

◎찬성의견/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경제력 집중·고실업 등 시장 실패/복지국가 전환·규제강화 불가피

사회과학에는 애로사항이 있다. 기계가 고장나면 기술자에게 물어서 수리하고, 병이나면 의사를 찾아가 진단과 처방을 받으면 된다. 고장난 부품과 병원균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병든 경우에는 다르다. 사회과학자들이 사회병리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면 사회병리를 야기한 세력들은 이에 대해 저항하면서 다른 원인과 처방을 제시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에서 논쟁은 피할 수 없다.

시장경제를 둘러싼 현재의 논란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시장경제의 결함 때문에 생긴 문제들에 대해서 재벌들은 시장경제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는 장점이 있다.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의사가 반영된 가격에 의해 자원이 분배됨으로써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된다.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 북한 등의 국가사회주의체제는 관료들의 자의로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효율성을 해쳤고, 결국 생산력침체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불완전하고 실패 현상이 뒤따른다. 독과점, 공황과 실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공공경제가 시장경제의 약점을 보완했고 선진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케인즈적 복지국가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인플레와 불황이 병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보수정당들은 노동자복지를 후퇴시키고 자본가들을 지원하는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노동자들과 중산층의 반발을 야기했다. 영국에서 보수당이 패배하고 노동당이 승리한 것은 이때문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의한 인허가, 자금배정 등 경제통제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경제통제는 현재의 경제발전 단계에 맞지 않으므로 철폐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재벌체제 심화, 공교육의 공급부진과 사교육의 과도한 팽창, 사회간접자본 확충 부진, 지나치게 높은 지가, 실업의 확대 등 시장 실패 현상도 바로 잡아야 한다.

이제 한국경제는 시장실패 해결을 위해서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고 복지국가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도 재벌을 주축으로 한 기득권 세력은 선진국의 신자유주의를 빌어서 한국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장실패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시장경제를 무조건 강화해야 한다는 재계단체 일각의 주장은 이미 시장지배력을 장악한 재벌의 이익을 변호하려는 의도이다. 재벌체제는 중소기업 경영 압박, 과도한 차입과 문어발식 진출 등 방만한 경영으로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된 요인이다. 재벌을 해체하여 독립경영체제의 국민기업들로 전환시키고 독점을 규제하여 유효경쟁을 정착시키는 것이 경제정책의 당면 과제일 것이다.

◎반대의견/공병호 자유기업센터소장/법·제도 간섭 줄어야 효율성 발휘/개입확대땐 ‘제2 제3 한보’ 초래

사회주의와 복지국가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지식인 사회의 친사회주의적 경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다. 91년 1월, 「전환시대의 논리」로 널리 알려진 이영희 교수의 고백을 생각해 보자.

『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생각하곤 했다. 인간성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사회환경의 개조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도를 낳은 바로 그 인간성이다. 도덕주의적 인간과 사회의 실현은 꿈일뿐이란 말인가』

그는 70년대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우상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사회주의의 길로 인도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끝내 시장경제의 승리에 대해서 유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솔직히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해서 애틋한 애정과 매력을 갖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에 대해서 지나치게 낭만적인 견해 즉, 이상주의적 인간형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세상의 인간들은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관찰하기만 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들은 정부개입에 대한 열정과 환상으로부터 쉽게 깨어날 수 있다.

낭만적인 인간관을 벗어버리면 누구도 정부개입을 강화해서 사회주의나 복지국가를 하자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최소한의 법과 제도하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이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에서 최고의 효율성과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원리인 규제완화, 민영화, 그리고 작은정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매사를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야말로 이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같은 정책이 대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력집중의 억제라는 것이 과연 실체인지, 아니면 허상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경제력집중의 억제라는 명분론에 묶여 계속해서 정부개입을 강화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제2, 3의 한보사건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한다.

바깥 세상을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세계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에게만 번영을 약속할 것이다.

◎결국 쟁점은 정부­재벌문제로 귀착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과 경상대 장상환 교수의 이른바 「시장경제」논쟁에 요즘 관계와 재계,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자유와 평등, 보수와 진보, 슘페터와 케인즈의 해묵은 논란정도로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논쟁은 재벌, 금융개혁, 정부조직, 규제완화 등 민감한 현실정책과제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학술논쟁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초 출간된 공소장의 저서 「시장경제와 그 적들」을 장교수가 「출판저널」(3월20일자) 서평을 통해 맹렬히 비판한데서 논쟁은 시작됐다. 공소장이 ▲자기기만적 세계관 ▲시장경제의 통제욕구 ▲본능으로서 집단·평등주의 등을 「시장경제의 5적」으로 지적하며 『시장기능의 확대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장교수는 『공소장은 시장의 실패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 지가앙등, 지역불균형, 지역불균형 등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바로 통제없는 시장, 즉 시장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소장은 4월5일자 같은 잡지에서 『시장실패는 오히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미증유의 풍요를 가져온 시장경제를 속죄양으로 삼지말라』고 다시 반박했다.

장교수는 이런 공소장의 반론을 「재벌체제 변호론」으로 규정했다. 장교수는 이 잡지 4월20일자 재반박문에서 『한보사태는 재벌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만약 여기에 시장경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확고한 경제력을 확보한 재벌에만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역시 지지않고 5월5일자 잡지를 통해 『한보사태는 시장경제의 문제점이 아니라 정부가 은행업무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며 『관치금융을 탈피해 은행에 시장원리를 적용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맞받아쳤다.

양자의 논쟁을 경제현실에 접목시킨다면 쟁점은 정부와 재벌의 문제로 집약된다. 장교수는 『재벌규제를 포함한 정부 개입을 강화, 복지국가로 가야한다』는 것이고 공소장은 『정부개입을 없애 민영화 탈규제의 시장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처방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한쪽은 정부와 관료의 독주를, 다른 한쪽은 재벌의 병페를, 즉 한국적 현실에서의 정부와 재벌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제3의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2개월 동안 보름간격으로 진행된 시장경제공방의 향후 전개추이가 주목된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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