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금융개혁을 경제 전반에 미치는 막중한 영향을 고려, 오는 대통령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경제체질에 대해 금융구조 수술이라는 극약처방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수긍할 만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토록 중요한 점들을 불과 4개월전에는 모르고 시작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한차례 철학도 긴 안목도 결여된 김영삼정부의 즉흥식 개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원래 개혁을 하는데는 총칼 등에 의한 물리적인 방법과 국민을 이해시켜 협력을 얻어 추진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일사천리로 해치울 수 있으나 부작용으로 실패하기 쉽고 후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착실하게 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권중 김영삼정부만큼 개혁을 요란하게 내세운 적은 없었다. 갖가지 과제들을 개혁이란 이름아래 철학도 실천계획도 없이 화려한 구호와 말로 포장하여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당장은 전시효과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은 갈팡질팡하고 온갖 부작용과 국민반발 등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경제개혁이라고 요란을 떨었던 신경제 정책이나 노동개혁 역시 완전 실패내지 시행착오를 빚은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사실 금융개혁은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금융질서의 현대화라는 점에서 늦은 감이 있다. 여러해 전부터 영국과 일본 등은 정부와 금융계·업계 및 전문가 등의 협의와 여론수렴을 거쳐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단행했고 또는 추진중이다. 따라서 금융 뿐만 아니라 산업과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과제인 만큼 김영삼정부는 정권초기부터 장기과제로 심의했어야 했다. 그런데 1월7일 김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느닷없이 금융개혁추진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은 파업정국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던 것이다.
대통령 직속의 금융개혁위원회는 1월 하순 31명의 위원으로 출범, 작업끝에 지난달 단기 개혁안들을 제시한데 이어 오는 9월 한국은행의 독립, 은행소유구조개선, 감독기관 통합 등에 관한 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었다. 아무튼 정부여당이 금융과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을 막기 위해 개혁을 다음 정권에 넘긴다는 취지는 옳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4∼5년간 장기적인 검토를 예고했어야 했다. 이번 연기의 합의는 여전한 관 주도경제,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 이끌기가 아닌가 하여 꺼림칙하다. 금융개혁위가 이같은 연기결정과 관계없이 개혁과제들에 대한 연구와 심의를 계속하기로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21세기의 한국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내실있는 금융산업의 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철학이 없는 반짝개혁, 즉흥식개혁, 인기와 시선만을 의식한 형식적인 개혁은 없어야 한다. 다음 정권은 부실한 개혁들을 남발하는 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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