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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가 몰락한다/야구장모임 등 회유불구 사상 최악의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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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가 몰락한다/야구장모임 등 회유불구 사상 최악의 ‘불황’

입력
1997.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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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끼리끼리’ 문화속 강압적 위계질서는 부담/‘조인트’해야 그나마 유지『모여! 싫어! 왜? 피곤하니까!』

중간시험이 끝나 다소 홀가분한 요즘, 각 대학의 게시판에는 고교동문회 소집공고문이 눈에 띄게 많이 붙었다. 그러나 참석률을 높이려는 선배들의 기발한 회유와 강경책에도 불구, 동문회는 사상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다. 80년대 이전 동문회원들이 행사때나 교내선거때 집단으로 세를 과시하고 결속력을 자랑하던 풍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항공대 J고 동문회장 조모(항공기계공학 3년)군은 『지난 3월 신입생 환영회를 겸해서 열린 동문회모임에 신입생 후배 25명중 고작 3명이 나왔다』며 『또다시 썰렁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아 5월 정기모임은 아예 생략키로 했다』고 말했다.

한양대의 지방 A고동문회장 서모(국문과 3년)군은 『해마다 참석률이 줄어 동문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일고 있다』며 『이러다간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이 끊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A고 동문회 운영위원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호기심을 끄는 감각적인 내용의 공고문을 「개발」하고, 지역연고 프로야구팀인 삼성라이온스의 경기가 있는 날에 잠실야구장에서 모이도록 하는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대학의 고교동문회가 고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의식에서 비롯된다. 나홀로, 끼리끼리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동문회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서울대 김모(불어교육과 2년)군은 『동문회에 나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른 약속이 생기면 이내 포기해 버리기 일쑤』라며 『동문회라면 왠지 강압적인 분위기가 연상돼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과거 기수별 단체기합같은 과격한 규율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전통적인 「폭주」문화조차 후배들에 대한 「아부형」술문화로 바뀌었다. 동문회트레이드 마크였던 「폭탄주」 「수소폭탄주」 「파도타기주」 등은 사라지고 지금은 「혼자 홀짝주」가 대세이다. 일부 동문회는 「술공포」로 참석을 주저하는 후배를 끌어안기 위해 「술 걱정은 마라. 못하면 안마셔도 되고 좋아하면 나발을 불어도 좋다」는 이색 공고문을 내기도 한다. 술이 부담돼 안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선배가 술을 강권했다가는 무안당하기 일쑤다. 서울대 K고 동문회의 3학년 학생은 최근 동문회 모임때 『선배가 주는거니까 받으라』고 술을 권했다가 신입생 후배들이 정면으로 거부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 전했다.

다만 이성을 동원하는 조인트(Joint) 동문회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상당수의 동문회가 모임의 성패여부를 조인트모임에 걸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선배들은 모임 한달전부터 컴퓨터통신 알림난 등에 조인트 파트너를 찾는 공고를 내는 등 부산하게 움직인다. 서울여대 김모양은 『조인트 동문회는 일년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에 괜찮은 남자고교 동문회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인트동문회는 엄밀한 의미의 동문회라고는 하기 어렵다. 서울대 지방 A고 동문회의 경우 이화여대 D여고 동문회와 10년이상 조인트모임을 가지면서 정작 「진짜」동문회는 사라져 버렸다. A고 출신인 권오익(26·회사원)씨는 『남녀가 어울리면 분위기도 좋고 재미있지만 결국 그것이 모임의 목적이 돼버렸다』고 아쉬워 했다.<이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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