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대신 탐닉을 우선하라/프리섹스·질서파괴를 외쳐라/인간내면의 파괴적 광기와 가상세계가 결합해 낳은 세기말의 이단아 ‘사이버 컬트’/악마숭배·잔혹취미 등 인터넷 홈페이지 8,000여개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사이버 컬트(Cyber Cult). 가상공간의 세계 곳곳에 파놓은 괴기적인 블랙홀이 청소년들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있다. 어느 금요일 자정 사이버 서핑을 즐기던 네티즌의 눈길은 인터넷의 악마주의 홈페이지인 「사탄의 교회」에서 멈췄다. 타오르는 불꽃을 배경으로 검은색 천이 뒤덮힌 제단 위에 악마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포도주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음산한 분위기가 컴퓨터 화면에 가득 차면서 마우스를 조작하던 네티즌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절제 대신 탐닉을 우선시 하라, 육체적 쾌락을 위해 인간들이 만든 위선적인 죄의식을 부정하라, 체제에 순응하는 획일성을 무시하라」
홈페이지 접속과 함께 나타난 「사탄의 9계명」을 읽어내려가는 네티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면속 깊숙히 빨려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어 『사탄의 신도는 2,000여년간 인간을 가식의 틀속에 가둬놓은 이성을 부정한다』는 내용의 「사탄의 바이블」이 나타나자 네티즌은 지적 호기심까지 발동한다.
「100달러를 교단본부로 보내면 신도자격을 주는 사탄카드를 보내드립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단 본부가 전자우편(E-MAIL)으로 발송한 포교문을 끝으로 「사탄의 교회」 홈페이지 검색을 마친 네티즌은 이미 사이버컬트의 파괴적인 광기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인터넷의 대표적인 사이버컬트 홈페이지인 「사탄의 교회」는 66년 4월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수도사 「안톤 라베이」가 만든 악마주의 사교의 한 분파. 전세계 인터넷 신도만 1만∼2만명에 달할 정도로 창궐하고 있는 이 사교는 억제됐던 감정을 해방시킨다는 「섹스의 자유」, 기존 종교와 사회체제를 부정하는 「질서의 파괴」를 기본 교리로 네티즌들을 유혹하고 있다.
문화비평가 정윤수(30)씨는 『사이버컬트는 인간 내면의 광기를 잔혹하게 표현하는 세기말적 문화현상인 컬트가 인터넷의 가상 세계와 결합하면서 생겨난 독특한 현상』이라며 『그러나 사이버컬트는 획일적인 질서와 맞서려는 대안문화 속성의 기존 컬트문화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자기탐닉과 파괴적인 광기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사이버컬트 홈페이지는 줄잡아 8,000여개. 사탄을 신봉하는 악마주의 사교집단의 포교 홈페이지를 비롯, 고양이 목을 자르는 아이들의 잔혹한 이미지를 담은 그림이나 조각난 시체 사진들을 모아놓은 가상 갤러리까지 다양하다. 코카인 제조법을 공공연하게 가르치는 마약관련 홈페이지와 미국을 백인의 천국으로 만들자는 인종차별론자의 홈페이지 등도 네티즌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부추기는 사이버컬트로 분류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에는 사이버컬트의 폐해를 감시하는 민간단체도 생겼다. 「사이버컬트 감시 네트워크」(CAN)의 릭 로스 회장은 『사이버컬트에 탐닉하는 네티즌들은 지나친 광기때문에 대부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초기에는 가족간 불화나 성격변화 등 가벼운 증세를 보이지만 일단 파괴적 사이버컬트에 빠지면 이유없는 적대감을 보이거나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실례로 사교집단 「천국의 문」 신도 39명은 3월26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집단 자살했다. 「하이어 소스」라는 웹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이들은 종말론과 과학이 결합한 「UFO(미확인비행물체)종교」를 신봉하면서 「헤일-밥」 혜성의 뒤를 따라 지구로 다가오는 UFO가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망상증세를 보였다.
이같은 사이버컬트의 폐해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전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인터넷을 타고 사이버컬트가 국내 네티즌들에게 빠르게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국내 최초로 사이버컬트 홈페이지 「왕십리분원」을 만든 승모(28)씨는 『국내 사이버컬트족들은 아직까지 미국처럼 파괴적인 악마주의에 탐닉하는 세기말적 증세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컬트족은 전문지인 「와이어드」나 「몬도2000」 등을 즐겨 읽으면서 음침한 골방에서 컬트영화나 컴퓨터음악, 컬트드라마, UFO 등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X파일」동호회 김모(26)씨는 『열성 동호인중에는 극중 주인공인 FBI요원 「멀더」처럼 바바리 코트차림에 인터넷을 통해 구한 가짜 FBI신분증을 갖고 다니기도 한다』며 『이들중에는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X파일」은 외계인에 납치당한 동생의 행방을 추적하는 컬트형식의 TV드라마로 미국 폭스TV가 94년부터 전세계에 방영했다.
국내 최초의 사이버컬트 온라인잡지인 「스키조」의 편집장 손동수(31)씨는 『인터넷의 파괴적 정보에 대한 여과수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이버컬트가 국내에 유입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홍덕기 기자>홍덕기>
▷사이버 컬트◁
컬트는 원래 중세때 기독교의 전통적 예배의식과 경전해석을 부정하고 나름의 대안을 만들어 광적으로 숭배하는 「사이비 종파」 내지 「사교집단」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대 문화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문화를 실험, 모색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작품을 열광적으로 선호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로 바뀌었다.
컬트문화는 기존 문화의 항체로서 도식적인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때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보수적 예술이 제공하는 중산층 신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컬트는 현실과 괴리된 가상공간에서 일탈적 가치, 이념, 종교 혹은 문화를 광적으로 탐닉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소수 집단이나 이들의 행태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사이버 컬트는 기존의 컬트문화가 갖는 긍정적 측면을 교묘히 이용한다. 기성세대의 도식적인 삶을 거부하고 보수적 가치와 도덕까지 부정,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 젊은 층을 유혹한다. 이를 위해 UFO, 반정보 등 묘한 「키워드」로 자신들의 정체를 위장한다.
이들은 현실의 제약과 경계를 뛰어넘는 가상공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악용해 자신들의 주장이 「절대적 진리」인양 선전한다. 또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서 인간 내부의 악마적 본성을 부추긴다.<박승용 기자>박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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