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대비 3,418명 세계 1위/교수 1인당 학생수 무려 26명/도서관·실험실 등도 원시수준/연구실적은 애당초 불가능▷비좁은 캠퍼스◁
대학생이 너무 많다. 우후죽순으로 새 대학이 문을 열고 기존 대학도 정원을 늘려 캠퍼스가 복작거린다. 늘어 나는 학생을 수용하느라 잇달아 건물을 짓다 보니 캠퍼스가 온통 공사장이고 교내 그린벨트도 마구 훼손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대학생은 3,418명으로 미국 3,350명, 호주 3,240명을 앞지르고 세계 1위에 올라 섰다. 올 3월에만 18개 대학이 새로 문을 열었고 교육부에 설립 신청이 들어 와 있는 것도 55개나 된다. 이대로라면 2003년께 대학정원이 고졸예정자를 앞지를 전망이다.
지난해 4년제 대학생은 120만명이 넘었다. 75년 20만명의 6배다. 교육대, 개방대, 방송통신대 학생까지 합치면 175만명이나 된다. 이같은 양적 증가는 대학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 비명문 사립대와 지방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남대 박성수 기획실장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 국립대 입학생 성적이 서울 명문 사립대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한마디로 엉망』이라며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지방대는 더욱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 이공계의 한 교수는 『학생들 질이 떨어져 도대체 가르치는 재미가 없다』며 『명문대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연구소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여건도 나빠졌다. 75년 1만80명이던 정규 교원은 96년 4만8,582명으로 5배 가까이 늘었으나 학생 증가율에 미치지는 못했다. 96년을 기준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는 26.1명으로 일본 18.8명, 미국 15명, OECD국가 평균 14.1명에 비해 크게 많았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엉터리 교육공간◁
우리 대학의 시설과 기자재가 원시 수준을 벗지 못하고 있다. 학생은 늘어만 가는데도 시설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교수 연구실과 도서관, 실험실 등과 학생 서클활동 공간이 태부족이다.
대학생들은 예외없이 비좁고 엉성한데다 야간이면 문을 닫는 도서관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어느 대학이든 밤 11시께 문을 닫는 바람에 야간 이용이 불가능하다. 면적도 교육부 기준에 미달하는 데다 자리도 비좁고 환기시설과 냉난방 시설도 형편없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96 대학 도서관 정보화 현황」에 따르면 95년 국립대의 도서관 면적 확보율은 기준의 82.2%에 머물렀고 그나마 학교별 편차가 컸다. 제주교육대는 251.6%의 높은 수준이었으나 지방의 Y국립대는 25%선이었다.
장서의 양과 질도 한심하다. 도서 비치율은 사립대가 학생당 평균 40.6권으로 기준치의 91.8%에 이른 반면 국립대는 평균 학생당 32.4권으로 64.6%였다. 또한 대부분의 책이 70, 80년대에 발간된 것이어서 이공계 학생과 교수에게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실험 실습 기자재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의 K대는 연간 전체 지출의 1.6%정도를 학생 실험실습비로 충당하고 있으며 Y대는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앞선 연구실적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실정이다. 더욱이 교육부는 지난 1월 대학별 실험 실습 설비 기준을 학교 자율에 맡겨 앞으로의 개선 전망도 어둡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이현청 소장은 『학생당 실험 단가를 규정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시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자율에 맡겨 두면 대학의 실험 실습 기자재 수준은 더욱 낙후할 것』이라고 말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등록금만 쳐다보니…’ 재정난 심각/재단전입금 비중 11.6% 불과/국고보조도 2.6%… 기부입학 고개/1인당 교육비 400만원,미의 10%
대학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입금과 기부금은 적고 정부 보조금도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 등록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마구 치솟는 경상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시설투자 회피와 교수·학생의 연구 부실이 불가피하다.
각 대학 총·학장들은 동문 기부금과 재단 전입금을 늘리기 위해 세일즈맨 처럼 바쁘게 뛰고 있다. 사용금액의 일부가 모교 발전기금으로 적립되는 교우회 신용카드를 발행하거나 정부나 기업의 연구용역을 따오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그래도 재정난에서 벗어날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한국 사학진흥재단이 최근 120여 사립대의 96년도 예산 및 결산을 분석한 데 따르면 지난해 사립대의 우수교수 확보 및 연구비 투자는 전체 지출의 평균 10% 내외에 그쳤다. 재단 전입금과 사업수익에 비해 교직원 인건비 등 대학 운영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기 때문.
연세대와 고려대는 지난해 각각 2,402억원과 1,467억원의 수입이 있었으나 이중 등록금이 각각 45.4%와 62.5%를 차지했다. 지출에서는 인건비가 각각 42.8%, 34.7%로 가장 비중이 컸다. 각 대학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 교원보다는 시간강사를 선호해 그 수가 벌써 5만여명에 달한다. 이에 따른 교육의 질적 저하는 결국 학생들의 부담이다.
학생들의 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6년 대학의 전체 수입에 대한 등록금 비율은 평균 73.6%에 이르렀다. 재단 전입금 비중은 평균 11.6%에 그쳤고 기부금은 고작 평균 7%대였다. 교육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있는데도 학생들의 재정 부담은 늘어만 가고 있다.
95년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연간 총예산은 6조2,657억원(사립대 4조7,175억원, 국립대 1조4,425억원, 교육대 1,057억원). 이를 전체 대학생수로 나눈 학생당 교육비용은 402만8,096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6,287만원, 존스 홉킨스대 5,245만원, 하버드대 3,647만원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학생당 교육비용이 대학 경쟁력의 주요 지표라는 점에서 애초에 국제 경쟁력을 기대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이같은 현실은 고등교육에 대한 낮은 공공 지원률이 큰 요인이다. 영국 대학은 재정의 35∼48%를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있고 미국은 사립대학에 대한 연방·지방정부의 재정부담율을 18∼25%로 명문화했다. 일본도 사립학교 진흥법을 통해 사립대에 대한 공공보조를 늘려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고보조는 2.6%대에 불과하다.
사립대학들은 학교재정의 7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현재 재정구조를 개선하려면 교육예산을 국민총생산(GNP)의 5% 수준으로 늘리고 고등교육기관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급속한 등록금 인상으로 교육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기부금 입학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고민도 ‘각양각색’/명문대는 세계적 성장위해/중위권대는 명문대 진입위해/지방대는 생존위해
대학의 고민과 목표도 각양각색이다. 명문대는 그동안 쌓아 온 명성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 중위권대는 명문대 진입을 위해, 지방대는 생존을 위해 각각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서울대는 우수한 인재들의 입학에 힘입어 국내 최고 명문대학으로 자리잡았지만 「우물안 개구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특히 연구·교육시설은 미국 주립대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는 「국제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을 목표로 발전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연세대는 세계 100대 학교에 국내 최초로 진입한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늘려 가고 있고 고려대 또한 개교 100주년인 2005년에는 세계적 대학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명문사립대 관계자들은 『국제수준의 대학이라는 목표는 아직 구호에 가깝고 국내 명문대와의 경쟁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화여대는 남녀공학 선호 추세속에서 우수한 여학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과의 학점교류를 실시하고 대학원에서는 연세대·서강대와도 학점을 교류하고 있다. 아주대는 우선 2000년까지 국내 5위권 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다른 사립대들도 명문대권에 진입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의 발전전략은 생존전략에 가깝다. 교육서비스의 주수요자인 농촌 학생들의 급격한 감소와 취업난, 편입학 확대, 교육시장 개방 등으로 학생 확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경남대 관계자는 『신입생 유치도 문제지만 우선 재학생이 다른 학교에 편입하지 않도록 잡아 두는 것이 우선 급하다』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의 경우 재정면에서 지방 사립대보다는 약간 낫다고 해도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국립학교 설치령」이라는 족쇄에 묶여 조직개편이나 과감한 개혁도 불가능해 발을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전남대 박성수 기획실장은 『LG경제연구소에 경영진단을 의뢰하는 등 노력하고는 있지만 연구소 이름 하나 바꾸는 것조차 교육부 승인을 얻어야 하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 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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