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학생들의 생존경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학생들의 생존경쟁

입력
1997.05.11 00:00
0 0

◎2003년이면 입학정원보다 수험생이 적어지고 내년부터는 대학시장도 개방된다/21세기를 맞는 상아탑 재정확보·조직개편 등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걸었다초여름 날씨같던 지난달 24일.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은 새벽 5시30분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일어난 직후 새벽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 아침상을 본 후 화장도 하는둥 마는둥 서둘러 집을 나선다.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7시에 열린 조찬모임은 동문들에게 학교 발전방안인 「비전 2006」을 설명하는 자리. 학교발전 기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학교에 돌아오면 9시. 반팔 셔츠 차림의 앳된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캠퍼스가 기지개를 켜는 시각이다.

서둘러 결재를 마치면 바로 간부회의가 시작된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에는 손님들이 찾아와 기다린다. TV와 VTR을 기증하려고 온 전자회사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지속적인」지원을 당부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등록금 한 번 더내기 운동」에 참여한 동문들의 기금 전달식이 열렸다. 1주일에 두세번 꼴인 기업인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정성껏 모은 돈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동문들은 더 소중하다. 이들과의 만남은 전적으로 총장의 몫이다. 이렇게 1주일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모금한 돈이 2억9,600여만원에 이른다.

교내식당에서의 늦은 점심식사 후의 하오 일과도 빡빡하다. 2시의 홍보위원회 회의는 학교 홍보용 CD롬 제작을 위한 첫 모임. 우수한 학생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학교 선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D롬은 특히 신세대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매체. 서울의 한 여자대학과 지방대가 제작한 홍보용 CD롬을 꼼꼼히 비교하며 장단점을 검토한다.

3시30분에는 새로 개발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하는 회의, 4시에는 용산구의원들과의 「청파거리축제」에 대한 의견교류 모임. 4시30분부터는 다시 교내 업무에 매달린다. 처장회의에 이어 신임교수를 면담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학교 발전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저녁 식사후 또 한군데의 모임에 참석하고 귀가한 시간은 밤 10시. 『대학총장은 명예로운 자리이기 이전에 학교를 위해 철저히 봉사해야 하는 자리예요. 총장이 앞장서 뛰지 않으면 우리 대학이 21세기까지 살아남아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해 나갈 수 없어요』

숙명여대 뿐만 아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경쟁력」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다. 대학마다 이름에 「비전」 「발전」 등이 들어간 특별조직이 가동중이고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외국 대학의 국내 진출이 내년이면 시작된다. 「6년후면 대학정원이 지원자수를 초과한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더욱 충격적이다. 대학이 학생을 모시러 다니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이르면 1, 2년안에 경쟁에서 탈락해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이 나타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총장을 비롯한 대학 운영 책임자들의 압박감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연세대 박길준 기획처장은 『2000년이 되면 대학들간에 벌어지는 생존경쟁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경쟁으로 인한 압박감은 국립대보다는 사립대가,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는 지방대학이 더하다. 지방 사립대의 경우 「세계화에 대비한 국제적 경쟁력 높이기」는 너무 먼 얘기다. 우선 국내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대전 한남대 김세열 총장은 지난해 학교홍보 TV 광고에 직접 출연했다. 『대학총장이 경영자화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싫건 좋건 총장부터 뛰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거든요』

한남대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중국 국가기획위원회 소속 경제관료들을 초청해 시장경제 교육을 하고 있다. 한달 과정의 교육에 드는 비용은 약 1억원으로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지만 『대전지역을 대표하는 사립대로 남아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서도 멈출 수 없는 교육프로그램이다.

대학 발전에 가장 긴요한 것은 역시 재원. 많은 대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총장 임용시 재원확보 능력을 최우선 임용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조선대 신문사가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차기 총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사업」으로 「대학경쟁력 강화」와 「교육재정 확보」를 든 응답자가 각각 33.5%와 30.4%를 차지했다.

국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강원대와 전남대 등이 발전계획을 세워 놓고 동문들과 지역 기업체를 대상으로 모금활동중이다. 강원대 하서현 총장은 『연구업적 평가와 연구소 통폐합 등을 통해 연구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재원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본부 조직 개편작업도 시작됐다. 재벌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아주대나 성균관대는 이미 대학본부 조직을 팀제로 개편하고 연구소와 전산망 개설 등 설비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연세대와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과감한 투자와 개혁은 아직 구상단계에 불과하다. 모두 돈 때문이다.

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이현청 소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개혁작업에도 뚜렷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이 차지않는 대학이 벌써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를 몸집 불리기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 대학도 미국 대학처럼 「상아탑」에서 「교육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객」을 끌어들일 유연한 조직과 전략상품이 중요합니다』<이상연 기자>

◎‘특성화’만이 살길이다/“주력학과 육성 우수학생 유치하자”/대학마다 교육체제 수술 박차

대학마다 특성화 작업이 한창이다. 대학 난립의 와중에서 주력 학과의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우수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자구책이다.

특성화 작업은 서울의 종합대학이나 지방대학은 물론 전문대학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성화 작업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지방대학들. 특성화에 성공한 지방대에 5년간 총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지난 2월 교육부의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 추진계획」으로 한결 가속도가 붙었다.

아주대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빠르다. 95년 3월 EMBI(Engineering Medicine Business International Studies) 육성정책 발표와 동시에 특성화 작업에 나서 교수 충원과 연구비, 각종 예산 등을 공학, 의학, 경영, 국제연구 관련 학과에 중점 배정하고 있다. 산학연 협동체제 강화를 위해 영상기술연구소 등 민간 연구소를 교내에 유치했고 학부 중심의 교육체제를 전문대학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의과대학원과 경영대학원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국립대학인 강원대도 지역 특성을 살린 자원개발, 북방연구, 환경·생물, 정보통신 분야의 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관련학과의 경우 자매대학과의 학생 교류 및 외국인 교수 영입을 우선 시행할 방침이며 강의 평가제를 도입해 우수 교수의 연구와 저술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또 지방 사립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기계·소재분야 국책 대학으로 뽑힌 영남대도 공대외에 상경대와 기초 과학분야를 중심으로 특성화 작업에 들어가 있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특성화 바람은 서울의 종합대학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한국외대는 외국어 전문대학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40개 채널의 위성방송을 수신, 외국어 화상 수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각국의 경제·사회 정보를 수집하는 외국학 종합센터를 용인캠퍼스에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2001년부터는 대학의 학생 모시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라며 『특성화를 통한 양질의 교육 서비스 제공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지적했다.<염영남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