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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비극/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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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비극/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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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근원적 의문과 거기서 도출될 결론이란 과연 무엇일까.그 해답이란 뜻밖으로 간단명료할 수가 있겠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도 우리나라는 역시 온갖 것이 재벌의 손에 장악당해 좌지우지되는 재벌의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주권이란게 국가의사의 최고원동력 또는 국가정치형태의 최고결정권을 의미한다고 볼 때 현실은 주권재민이 아니라 주권재벌로 보는게 오히려 솔직하다. 왜 그런지 한번 꼽아보자.

검찰수사결과 자기돈이란 110억여원밖에 없었던 한보가 권력을 업고 금융권의 돈을 6조원씩이나 끌어들였다면 이를 보리밥풀 하나로 운좋게 월척을 낚은 것 정도로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국가적 최고 결정권행사나 그에 버금갈 막강의 영향력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재계랭킹 불과 14위였던 한보가 은행 등 금융권은 물론이고 여·야정치권마저 무차별로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 청와대와 대통령부자마저 재임중 청문회개최 등의 유례없는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한보사태가 4개월간의 국정표류는 물론 깊은 경제적 불황으로 이어져 하루 2,000명씩의 실업사태가 나고 있음은 결과적으로 재벌이 농간을 부리면 나라도 삼킬 수 있음을 노골화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재벌들의 위상은 현정권 출범후에도 더욱 커지기만 했다. 정경유착이 5·6공 등 군사권위정권시절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의 재벌이란 공룡들은 소위 「보험료」나 대선자금을 미끼삼아 「문민정부」아래에서도 국민부담이라 할 은행돈이란 빚으로 몸체를 끊임없이 불려왔던 것이다. 앞서 공정거래위가 발표한 30대 재벌의 경제력집중현황은 97년 들어서도 계열사가 150개나 늘었고 자산총액도 61조5,000억원(21.4%)이나 증가했음을 드러낸 바 있었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 성장을 해친다고 재벌폐해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벌들은 여전히 침몰을 모르는 거대 선단이요 항공모함이다. 우스갯소리같지만 정태수라는 한보총수가 법정에서 꾀병설이 분분한 속에 말문을 닫아 버려도 의학사전에도 없는 무언증으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요지경 세상인 것이다.

한보사건 여파로 우리 재벌들이 오히려 선물마저 챙겼다는 시중의 볼멘소리도 경청할 만하다. 한보사태 이후 삼미가 부도나고 진로에 이어 다른 일부 재벌들이 방만경영 등으로 부도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서둘러 성사시킨게 바로 금융권의 부도방지협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침항모라는 재벌들인데 한보사태를 겪고서도 또 다시 그들이 부도가 나지 않게 이중으로 보증을 서주자는 것이니 요즘 세상에서 살판이 난 것은 재벌뿐이라는 역설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를 단기간에 이만큼 이끌어 올리는데 재벌들이 끼친 공로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옛 그리스신화에서나 있었던 「미다스」의 비극을 이제와서 잇따라 재연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옛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황금을 탐한 나머지 주신 디오니소스에게 간청해 자기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어 소망은 이뤄졌지만 사랑하는 아들은 물론 먹을 음식까지 황금으로 변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미다스를 황금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 준건 파크트로스강에서의 목욕이었다고 신화는 전한다. 그렇다면 우리 재벌들과 부도덕 정치권을 황금의 저주와 비극에서 구해줄 오늘의 파크트로스강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보사태 배후규명이 끝내 대선자금이란 핵폭탄으로 비화하면서 정치비용 절감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도 그냥 있기가 낯뜨거웠던지 정치자금 개선방안마련에 나서기로 했다고는 한다. 그리고 저비용·고효율의 권력구조개편논의가 한편으론 내각제나 대통령제 이름아래의 권력분할구도 모색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오늘이다.

하지만 내각제라도 된다면 역시 살판이 나는건 또 재벌일 것이라는 예단도 없지 않고 보면 우리의 파크트로스강 찾기에 지혜를 모아야겠다. 부도덕재벌을 다스릴 모두의 각오만 있다면 그 강을 못찾을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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