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엔 몸사리고 아랫사람엔 반말까지/논리적 질문 생각없이 수직적 사고의 처신만우리 한국인들이 수직적인 의식구조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수직적인 의식구조란, 사회의 모든 개체와 관계들을 서열관계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 입사 연도, 학번 등 차등을 둘 수 있는 어떤 수치들을 기준으로 서열이 나뉘고 이 서열로부터 일련의 수직적 의식구조가 형성된다.
이 구조는 지위, 재력, 권력 등에 의해 생겨나는 권위의식과 결합되어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혹자는 한국에서 학문을 위한 순수한 토론이 가능한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학문 토론을 위한 모임에도 선후배, 사제지간 등에 의한 서열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수직구조에 기반한 토론에서 선배님 또는 선생님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사서하는 고생길」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요사이 시중에 회자되는 청문회의 모습도 이런 수직적 의식구조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연배가 낮은 이에 대해서는 불쑥 반말을 던지고 아랫사람 대하듯 일장 연설과 함께 호통을 치다가도, 권력이든 지위든 자신보다 높은 서열을 가진 이에게는 몸을 사리는 작태가 그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소문들을 늘어놓고 증인들이 그것을 부인하면 섣부르게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따라서 그들의 질문과 답변의 언조는 항상 격해있다. 논리정연한 증거제시와 질문을 통해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 보다는 나의 목소리에 눌려 상대방이 스스로 이실직고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스스로 높은 사람들인 그들에게 품위와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밝혀내는 청문회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머리 속에 나는 누구보다 높고 누구보다 아래이며, 누구에게는 이렇게 해야하고 누구에게는 저렇게 해도 된다는 수직적 의식구조를 가득 담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자신의 역할보다 수직구조에 어긋나지 않는 처신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 수직적 의식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단 한사람이라도 청문회장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렇게 허탈한 청문회를 보지 않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이런 모습은 비단 청문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 곳곳에서 비슷한 모습들이 펼쳐진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때, 종업원에게 함부로 하는 반말부터 거의 명령전달식이 되기 쉬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수직적 의식구조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수직적 의식구조에 비하여 역설적으로 우리는 매우 희박한 계층의식을 가지고 있다. 격심한 변화를 수반한 근대화 과정을 거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계층간의 차별성은 거의 없고 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계속해서 수직적인 구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보다 낮은 사람을 밟고 올라서려는 상승욕구가 들끓고 있다. 그들이 획득하려는 서열의 윗자리는 사회에 대한 의무는 없고, 권리만 부여받는 자리이다.
이에 비해 영국이나 미국 등 외국의 몇몇 나라들은 외형적으로 보면 엄연한 계층사회이나, 사회 엘리트층이 확고히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수평적인 의식구조의 소유자들로 여겨진다. 게다가 엘리트층은 자신의 신분에 부여된 권리를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의 이행에도 충실하며 일반 대중보다 엄격한 윤리의식 및 도덕관이 적용된다. 따라서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스스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엘리트층 대부분이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수직적인 의식구조는 장유유서같은 우리의 좋은 전통과 연결된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좋은 전통의 고수가 잘못 확대 해석되어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머리 속의 수직적 의식구조를 지우고 세상을 들여다보자. 옳고 그름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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