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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내것이다/윤구병 농업·전 충북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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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내것이다/윤구병 농업·전 충북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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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전학와서도 일등을 놓치지 않던 경민이가 중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여 학교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지도 벌써 여섯달 남짓 흘렀다. 경민이 부모님은 모두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아버지는 보험회사의 중견간부로 근무하는 분이다. 이 분들이 두 아이를 시골로 전학시켜야 하겠다는 긴 사연을 나에게 보낸후 어느덧 한해를 넘겼다.그 뒤로 경민이네가 집을 지어 우리 마을로 이사온게 지난해 9월. 경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구김살 없이 밝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 아이도 중학교에 가기를 싫어하고 부모도 구태여 아이를 야단쳐 가며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여긴 듯하다. 면 소재지에 학교가 있으니 보내는게 어떠냐고 옆에서 말해 보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일손을 거드는 게 학교에서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부가 된다면서 경민이 부모는 우리 일터에 경민이를 보냈다. 「등교」시킨다는 제법 격식있는 표현을 쓰면서.

경민이는 고추 모종하는 걸 돕기도 하고, 나무 다듬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 톱을 들어 나무를 잘라 보기도 하고, 드라이버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보기도 한다. 어떤 때는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같이 가고 밭에서 김을 함께 매기도 한다. 오늘은 희정이 아저씨가 토담집을 짓는 솔밭터에 가서 집짓는 것을 보고 돌담으로 장독대를 쌓는 내 옆에서 어정거리기도 하고….

제도교육의 폐해 뿐만 아니라 이점도 잘 알고 있는 경민이 어머니는 경민이가 교과서 지식에 너무 무심해져 애써 구해 놓은 중등 교과서를 들추어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가끔 걱정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말로 달랜다.

제도화한 교육체제 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손실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는데 있다. 유치원 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제도 교육기관은 아이들이 스스로 제 힘으로 자기 적성과 취미, 그리고 삶의 리듬에 맞추어 시간을 통제하고 조절할 기회를 조직적으로 박탈한다. 어떤 아이는 그림 그리는데 취미가 있어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그리는데에만 몰두하기를 바라지만 끝종이 울리면 붓을 놓아야 한다. 그 다음은 수학시간인데 이 아이는 수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50분간 지속되는 이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한눈을 팔거나 딴전을 피우면서 때운다. 이렇게 등교시간에서 하교시간까지 타의에 의해 빈틈없이 짜여진, 인위적으로 분할된 시간의 틀에 맞추어 10년이상 살다 보면 아이의 지적 능력도, 감수성도, 행동 양식도 모두 기계화하여 무엇인가 저 나름으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지금 경민이는 태어나서 의식이 싹튼 뒤로 처음 스스로 자기 삶의 시간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제 손으로 바느질을 하여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에 옷을 해 입히는 데에는 시간을 물쓰듯 하지만 서울에서 과외까지 시켜가며 가르친 영어는 아예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관리를 못한다고 나무라지 말아라. 때가 되면, 그리고 꼭 그럴 필요를 스스로 느끼면 영어가 되었건, 아프리카 스와힐리어가 되었건, 구조역학을 계산하는 고등수학이 되었건, 언젠가 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교과서에서 익힌 대부분의 지식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방해가 되는 수도 있다. 지금의 제도교육은 역사가 200년 밖에 안되고, 우리나라에 수입된지는 50년 남짓이지만 벌써부터 온갖 병폐가 다 드러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폐해는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삶의 리듬을 획일화하는데 있다. 정보를 하나 더 알고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얻을 힘과 열의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이런 내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제도화한 교육의 모범생이었던 어머니보다 거기에서 벗어난 경민이의 모습이 아직까지는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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