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권고사직 당하느니 퇴직금 조금 더 받자”/변형·재량근로제는 실질임금 감소 논란『차라리 명예퇴직을 하겠다』
개정 노동법이 정리해고제를 명문화함에 따라 명예퇴직을 요구하는 노조가 잇따르고 있다. 아무 대책없는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를 당하느니 차라리 퇴직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명예퇴직이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증권가 등에서 불고 있는 「퇴직금 중간정산」 바람도 신노동법이 가져온 변화의 한 단면이다. D증권은 지난 3월 직원 357명의 퇴직금을 중간 정산, 188억원을 지급했다. 「퇴직금 중간정산제」 바람은 점점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퇴직후 일괄지급하는 것에 비해 부담이 적다는 사용자의 계산과 퇴직전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노동자의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근속년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느냐, 아니면 근속년수는 그대로 둔 채 퇴직금 누진만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노사간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사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정리해고 문제. 새 노동법이 정리해고제 시행을 2년간 유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제는 벌써부터 단체협약 개정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했다.
경총은 되도록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를 포괄적으로 열거하는 한편 「합의」가 아닌 「협의」 조항으로 하려는 데 반해, 노동계는 엄격한 노사합의를 원칙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새 노동법 적용 이전에 고용조정을 단행하려는 사업장이 늘어 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리해고 요건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존의 법원 판례에 의거,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사 양측은 최근 포철에 인수되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는 삼미특수강을 「시범 케이스」로 주목하고 있다.
2주 단위 주 48시간 한도와 1개월 단위 주 56시간 한도 내에서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한 변형근로제는 노동시간과 임금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4시간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병원이나 계절적 변동요인이 큰 사업장의 경우 노사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병원노련 김유미(37) 부위원장은 『변형근로제 시행시 반드시 노사합의를 거치도록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 노동법 시행령은 일정 기간을 평균하여 주당 노동시간이 44시간을 넘지 않으면 시간외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변형근로제를 실시할 경우 임금이 최대 6.4% 정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재량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인정근로제」는 사무직, 전문직에게는 불리하고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재량근로제」는 실제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시간만을 일한 것으로 간주해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 「근무시간=실적」의 등식이 잘 적용되지 않는 관리직이나 창의적인 일을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주로 적용되며,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실질소득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여성들의 취업기회는 대폭 늘어날 것 같다. 육아, 가사 등의 부담이 큰 여성 노동자들이 자기 사정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때문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노총 VS 민노총/민노총 제도권 진입후 본격 힘겨루기/‘경쟁통해 조직률 제고’ 기대속/“결국 단일화 이루어야” 인식도 공유
1일 열린 한국노총의 노동절 기념식은 매우 이례적인 옥외집회였다. 한국노총은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후 거리행진까지 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념식에는 매년 참석하던 노동부 고위관리들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들의 축사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한국노총은 정부측 관계자의 참석을 꺼렸고, 노동부도 옥외집회에 얼굴을 내미는 데 대해 모양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이같은 노동절 기념행사 모습은 개정 노동법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삭제, 민주노총이 제도권에 들어 오면서 빚어진 변화이다.
양대 노총의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변화는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추천해오던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20명중 6명을 최근 줄다리기 끝에 민주노총에 양보해야 했다. 한국노총이 우리나라 노동계의 유일한 「내셔널 센터(National Center·전국조직)」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 오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현재 한국노총은 5,500여개 노조와 약 102만7,000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민주노총은 900여개의 조합과 51만여명의 조합원을 이끌고 있다. 규모만으로 볼 때는 아직 경쟁상대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노총을 이탈,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노조들이 잇따르고 있어 한국노총은 긴장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22일 조직개편 때 조직사업국을 신설, 신규조직 건설에 힘을 기울이기로 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신언직(35) 조직부장은 그러나 『전국적으로 노조조직률이 14%정도에 불과한 마당에 기존 조직을 잠식하는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은 지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노총이 삼성, 포철 등의 대단위 사업장에 대한 신규노조 건설을 공식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국노총 최대열(41) 홍보국장은 『경쟁체제 도입은 전체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쟁을 통해 노조조직률을 높여 「고객(노동자)만족 서비스」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 봄직하다는 것이다.
양대 노총관계자 모두 결국은 「노총 단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데는 인식을 같이 한다. 한국노총 박인상(68) 위원장은 임기중 통합을 위한 초석을 반드시 놓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민주노총 또한 지난달 제5차 대의원대회에서 「2,000년내 단일 노총 쟁취」를 공식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공식 논의는 아직 전혀 없다. 무엇보다 「노동계의 맏형」(노총)과 「노동운동의 적자」(민주노총)를 자임하는 양 노총간에 아직 불신의 골이 깊은 탓이다.
정부와 사용자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적」과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양대 노총의 「부분 경쟁, 부분 공조」가 어떤 형태를 띨 것인가? 또 이런 경쟁과 공조를 통해 노동운동의 역량을 높여 노총 단일화라는 최대의 과제를 풀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황동일 기자>황동일>
◎교원·공무원 노조 ‘뜨거운 감자’/단체결성조항 국회상정 누락/노동기본권보장 여전히 숙제
새 노동법 발효에도 불구하고 교원 및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개정 노동법에 따라 그동안 불법단체였던 민주노총 산하 상급단체들이 속속 합법단체화하고 있지만 일부 기능직 공무원을 제외한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는 여전히 「불법」이다.
교원 노동기본권과 관련, 정부는 지난해 노동법 개정안에 99년부터 교원단체 결성을 허용한다는 조항을 넣었지만 이 조항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국회 상정과정에서 빠져 버렸다. 이 조항이 개정안에 포함됐다면 교원들은 제한적인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노동법 개정과 관련해 야당 당사 농성, 무기한 단식농성 등을 전개해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앞으로도 합법화 투쟁을 계속할 방침이다. 국제교원노동조합총연맹(EI)과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전교조 문제는 12월 대통령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대선주자들이 전교조의 요구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전교조 합법화가 우리의 최종목표』라며 『노개위 등을 통해 정부에 계속적으로 합법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28일 창립 8주년을 맞아 전국적 집회를 열 계획이다.
전교조 문제는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관련해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노총은 6일 법외단체인 전교조와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 등을 포함한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민주노총 임원진에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고자가 들어 있고 법외단체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신언직 조직부장은 『민주노총 산하 연합단체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혀 장외투쟁 등 추후 마찰이 예상된다.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법과 복무규정에 따라 일부 기능직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없게 돼 있다. 공무원 복무규정은 철도 체신 직종과 국립의료원의 기능직 노동자에게만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있다.
전국철도노조의 김현중 홍보실장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너무 제약돼 있어 현수준의 인원과 조직을 갖고는 정부와의 협상에서 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우선 전체 기능직·지방직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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