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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청문회의 의미와 과제/곽노현 방송대 교수·법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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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청문회의 의미와 과제/곽노현 방송대 교수·법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7.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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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도 진실도 없는 ‘맥빠진 잔치’/제도·관행 개선없인 실체규명 난망25일간의 화려한 청문회가 끝났다. 소문난 잔치의 끝 마냥 허탈하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없고 청문회스타도 탄생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청문회가 아니었나 싶다.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진 까닭에 『이까짓 청문회는 해서 무엇하느냐』는 볼멘 소리마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물론 속마음이야 청문회를 제대로 활성화시키라는 것이지 다른 뜻이 없다. 국회청문회가 아니라면 무슨 수로 대통령 아들이나 대통령 비서관이 쩔쩔 매는 모습을 보겠는가. 이것만으로도 청문회는 소중하다. 다만 진실을 은폐하려는 증인의 의지와 계산 앞에 맥을 못추는 현재의 청문회 제도는 시급히 개선되어야한다.

한보청문회에 대한 불만은 주로 위원들의 준비 소홀과 증인들의 자물쇠 입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양심범이나 확신범이 아닌 형사혐의자들에게서 정직한 자기 고해를 기대하기란 애당초 무리다. 더욱이 대부분의 증인들은 구속중이거나 구속을 앞둔 상황이라 극도로 입조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증인을 비난하기 보다는 특위위원들의 준비소홀을 탓하는 소리가 더 높다. 실제로 특위위원들은 시간이 없다면서도 뻔한 질문을 되풀이하는가 하면 증인이 드러낸 주관적 편견과 그릇된 판단을 그때그때 논리적으로 추궁하지를 못했다. 또한 폭로성 질문과 면피성 훈계에 치중할 뿐, 제도적 방책제시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증인들의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고강도 부패방지법과 돈세탁방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지않느냐』는 식의 질문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위원의 역량부족이나 준비소홀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소속당 증인 감싸주기와 상대당 흠집내기도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니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이제라도 청문회 생중계를 통해 그런 실상을 가감없이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국회의원들이 가끔 증인들에게 호통을 치고 훈계한 것도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툭하면 『재판에 계류중이라 말할 수 없다』는 철면피 증인들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도 없는 것 아닌가.

돌이켜보면 한보청문회의 한계는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위시한 다수의 정권실세들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증언이나 제보가 나올 상황이 못되었다. 더욱이 한보비리의 기술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파헤치려면 기업활동 및 금융활동의 논리와 관행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수적인데 그런 의원이 거의 없었다. 5공청문회와 달리 이번에 스타의원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는 이런데 있을 것이다.

한보청문회도 성과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크고 작은 권력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자신의 임무를 돌아보게 했을 법하다. 평소 접할 수 없던 내로라는 정권실세들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보면서 권력의 속성에 눈뜬 국민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청문회의 성과는 역시 한보비리의 정치사회적 해석을 통해 그 총체적 윤곽을 국민에게 한결 명확하게 전달한 데 있는 듯하다. 원래 국회청문회의 조사목적은 검찰이나 법원과 달리 증인의 형사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진상을 파악하여 입법필요에 대비하는데 있다. 한보청문회 덕분에 권력형 금융비리의 구조와 배경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이해와 규제의지가 증대된 이상 청문회는 어느정도의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특위위원들을 무턱대고 나무라거나 청문회제도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생중계까지 되는 마당에 일부러 게으름을 피울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보청문회의 한계는 바로 청문회제도와 관행의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청문회에 대한 실망은 이제 청문회의 실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의 개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국정조사권의 발동요건 완화, 국회특위의 조사권한 강화, 증인의 면책특권부여, 위증죄 처벌강화 등을 내용으로 청문회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이래야 거짓말 경연대회가 아닌, 볼맛나는 청문회가 가능하다. 이것이 한동안 풍미했던 청문회 무용론에 담긴 진정한 여론의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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