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모든 사태는 그 연원을 대부분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치의 개혁 또는 변화에서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맨 먼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사안은 대통령제가 과연 우리의 풍토와 토양에 적합하느냐의 문제이다. 대통령제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미국에서 발명됐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것은 1776년. 연방헌법이 제정된 것은 그로부터 11년의 장구한 세월이 경과하고 난 1787년이다. 이때 이 헌법을 통해 대통령제가 정립됐다. 그러나 헌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바로 대통령이 선출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나 더 뜸을 들이다가 1789년에서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대통령이 없었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독립선언후 연방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기까지의 13년간에도 임기 1년의 대통령이 14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대통령들은 영문표기로는 여전히 프레지던트(President)이지만 한자표기의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의회에서 선출된 회의주재자 또는 사회자라는 의미였다. Preside라는 영어단어는 사회하다, 주재하다, 통할하다라는 뜻이고 따라서 프레지던트는 Preside 하는 사람, 사회하는 사람, 중론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오늘까지 건재한 것은 미국의 위대한 역대 대통령들과 여야 정치인들 그리고 많은 미국 국민들의 숨은 노력의 결과이다.
첫번째 위기는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때 왔다.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워싱턴과 같은 당인 연방당이었고 제퍼슨은 야당인 민주공화당이었다. 제퍼슨은 현직 대통령이자 여당대표인 애덤스와 싸워 이겼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확정까지는 숱한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여당에 이긴 것은 좋았으나 제퍼슨은 부통령후보 아론버와 73표로 동점이었다. 정 부통령의 표가 동수일 때는 하원에서 결선투표를 하도록 돼 있다. 일이 꼬이느라 하원의 다수당은 연방당이었다. 연방당은 조건을 걸고 나왔다. 연방당은 자신들이 채용한 고위관리들을 유임시키고 연방당의 정책을 답습하라고 요구했다. 제퍼슨은 단호히 거절했다. 수개월에 걸쳐 무려 36회나 투표를 거듭한 끝에 제퍼슨이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국부로 추앙되던 이승만 대통령은 임기중 하야하고 해외로 망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중 시해됐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 최규하 대통령은 법정에 강제구인 됐다. 누구보다 청렴결백을 강조하던 현직 김영삼 대통령은 차남을 둘러싼 의혹때문에 국민앞에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했다.
명분론이 아니더라도 현재와 같은 대통령제를 존속시킬 수 없는 현실적인 중대장애가 있다. 현재의 선거관행대로라면 대선자금의 수요가 1조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조라는 돈은 온라인을 통해 5만원 10만원씩 들어오는 돈으로는 결코 충당할 수 없다. 몇십억 몇백억씩 뭉칫돈이 들어와야 한다. 이같은 큰 돈을 낼 수 있는 것은 대기업뿐이다. 이런 난관을 어찌어찌 잘 넘긴 당선자가 있다 하더라도 당선 순간부터 바로 이 돈때문에 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살려야 한다. 지나간 역사는 결코 바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요즘의 사태가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정치적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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