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황금 왕관과 흙묻은 발/이지관 가산불교문화원장(화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황금 왕관과 흙묻은 발/이지관 가산불교문화원장(화요세평)

입력
1997.05.06 00:00
0 0

◎권세의 왕들도 진리에는 숙이는 법/질탕한 욕심버리고 참회의 길 가자꽃피는 오월이 더욱 푸르다. 부처님 또한 이 좋은 계절에 오셨다. 인도 북부 쾌적한 나라 카필라국 정반왕의 아들, 싯다르타 태자가 탄생한 달이다. 만삭이 된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해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꽃비 내리는 룸비니동산에서 태자를 낳는다. 길에서 나서 길을 가르치다가 길에서 열반하신 성인이 사바세계와 인연을 맺은 달이다.

그 당시 인도는 여러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예외없이 그곳에도 소유와 경계가 있어 적지 않은 분쟁과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정반왕은 태자를 얻은 기쁨에 점성가를 불러 그의 미래를 묻는다. 점성가가 이르기를 『왕궁에 있으면 만국을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하면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가 되리라』하였다. 전륜성왕이란 철권의 통치자를 말함이며, 사생이란 태로, 알(란)로, 습기에서 변화로 태어나는 일체 생명계를 일컫는 것이니, 모든 생명의 어버이가 되리라 한 것이다. 그 예언은 정반왕은 물론 왕궁을 긴장시켰다. 전륜성왕을 희망하였기 때문이다. 청년이 된 태자에게 권세와 영화는 안중에 없었으며 새가 벌레의 몸을 삼키는 광경, 또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늙음과 죽음 등 먹이사슬과 생로병사로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에 번민하게 된다.

스물아홉 성년의 나이에 그는 표연히 왕궁을 떠난다. 6년간 각고의 수행 끝에 35세가 된 어느날 이웃나라 마가다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길로 길에서 길을 가르치며 45년의 고단한 교화의 길을 걷다가 80세 되던해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다. 모국 카필라국을 위협하던 강국 이웃나라의 왕들은 그의 단월이 되어 그의 흙묻은 발에 예배하고 귀의하였으며 인민을 다스림에 그치지 않고 뭇 중생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자비무적. 활과 창, 분노로 맞서야 했던 동시대의 왕들이 이웃과 사생을 사랑하는 영원한 진리에 머리 숙여 따른 것이다.

정반왕은 고국에서 멀리 타국의 하늘을 향해 합장하며 이젠 성인이 된 아들을 그리워했다. 황금의 왕관도, 칼과 병사도 없이 오직 누더기 걸친 제자들과 발우 하나로 떠도는 성자에게 권세의 왕들이 엎드려 예배한다 하니 전륜성왕의 꿈을 버린 태자의 선택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당시 이웃 마가다국의 왕이었던 빈비사라왕은 태자가 수행하던 어느날 고국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한 적이 있다. 물론 태자는 단호히 거절했다. 깨달음을 이룬후 다시 만난 왕은 대나무 우거진 푸른 동산에 죽림정사를 지어 기증하고는, 자주 왕래하며 가르침을 받는다.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선택이 왜 후회없는 영원한 선택이었는지는 우리는 이제 묻지 않는다. 그리스도 또한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권세 저 너머로 길이 빛나지 않는가. 오욕의 질탕한 권세놀음에 민심이 괴로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은 늘 그런 것이려니 하여 외면한다면 이 또한 길에서 늘 길을 인도하시던 성인들의 뜻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권세와 명예, 그리고 생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영원한 자유의 길을 가르쳤으며 제자들과 더불어 그 실천을 철저히 도모하고 완성해 갔다. 며칠전 가톨릭교단의 사제들이 청빈을 결의하며 길을 걸었다는 보도를 접하며 길에서 길을 보이신 성인을 본받음이기에 참으로 뜻있는 일이라 여겼다. 황금의 왕관을 버리고 떨어진 누더기 한 벌로 간신히 감싼 그 성인의 몸이 빛나고 빛나 우주를 비추며 중생의 어버이로 모든 생명에게 절대사랑의 모범을 보이신 그 높고도 또 낮으신 성인의 흙묻은 맨발이 한없이 그립다.

부처님은 설법전에 늘 「세족이부좌이좌」라 하셨다. 흙묻은 발을 씻고 길 위에 자리를 깔고는 법문을 하셨다. 꽃피고 푸르른 참으로 아름다운 오월이다. 청빈을 맹세한 벗들과 신마저 벗어버리고 맨발로 참회하며 이 땅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충돌하는 권세의 욕망을 참회하고 물량에 현혹된 백의민족의 부질없는 소유욕과 과소비를 참회하며, 참으로 굶주리는 동포의 아픔을 참회하며, 사생의 아픔을 다 돌아볼 수 없는 우리의 안목을 참회하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