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정권 반드시 심판’/깨어있는 유권자의 승리『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보존의 수단을 갖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의 유명한 명제이다.
이번 영국총선에서 노동당은 과반수인 330석보다는 88석 많고, 보수당 의석보다는 무려 253석이나 많은 압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파죽지세의 승리는 전례가 없는 일로써, 보수당은 1832년 이래 최대의 패배를 기록했다.
메이저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은 지난 7년간 유럽에서는 가장 건실한 경제를 이끌어 왔으며, 영국에게는 항상 골칫거리인 북아일랜드 문제에 있어서도 평화정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왜 영국 유권자들은 보수당을 버리고 노동당을 택했을까?
보수당은 끊임없이 부패와 섹스스캔들에 휘말리고 유럽통합문제로 당내 분열상을 보인 반면,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과감하게 노조 의존의 좌편향 노선을 청산하고 중도개혁노선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노동당내 좌파도 총선승리를 위해 중도개혁 노선에 대한 반발을 자제하고 끝까지 당의 단결을 견지했다. 마치 조지 부시가 전형적인 냉전시대 지도자인 레이건의 아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세대인 클린턴에 밀려 났듯이, 역시 냉전형 지도자인 마거릿 대처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메이저도 새로운 세대의 기수인 블레어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노동당의 변신이 서구 사회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인가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른 느낌이다. 다만 「변화」와 「개혁」도 「보수」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설파한 에드먼드 버크의 명제가 토니 블레어의 목소리에도 스며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필자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 총선을 굳이 참관한 까닭에는 정권교체의 현장을 직접 보고자하는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한보 부패와 대선자금 공방으로 세월가는 줄 모르는 한국 정치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돈 안쓰는 깨끗한 선거운동의 현장을 보고 싶은 갈망이 더욱 컸다.
선거일을 사흘 앞두고 도착한 런던의 거리는 선거를 치르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후보 이름을 알리는 플래카드나 확성기 소음도, 홍보물을 나눠주는 그 흔한 운동원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눈에 띄는 것이라곤 각 정당에서 세운 꽤 큰 선전 입간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야단이었다. 메이저 블레어 애시다운(자유민주당) 등 각당 당수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연일 TV에 등장하여 유권자들의 질의에 직접 응답하거나 심층토론을 벌였다. 다만 각당 당수들간의 TV토론이 성사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각 후보는 선거구 규모에 따라 최대 8,000파운드(약 1,200만원)에서 최소 4,000파운드의 비용으로 선거를 치른다. 우리 풍토에서는 구의원 선거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로 그들은 6주간의 선거운동을 아무런 무리없이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돈 안쓰는 선거를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은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점심식사를 스스로 가져오고 교통비도 자기 돈을 쓴다. 매표와 부정이 개입하기 쉬운 호별방문의 경우에도 엄격한 선거자금의 한도와 무서운 신고정신 때문에 섣부른 탈선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부정을 저지르고 싶어도 유권자들이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상깊었던 일은 「부패추방」을 기치로 출마한 BBC의 전쟁특파원 벨이 보수당 부패의혹의 상징으로 거명된 닐 해밀턴을 눌러 이겼다는 점이다. 깨어 있는 국민만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시민정치의 힘을 확인한 의미있는 이벤트였다. 부패한 정권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는 영국 국민들-세계 최고의 국민이 치르는 가장 깨끗하고 공정한 총선을 참관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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