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근면·성실 보여주세요”/부모의 뒷모습 자연스레 따라배워/남을 배려하는 염치교육 특히 중요/사회적 성공 좇다가 가족간에 무관심/아버지 위기는 결국 아버지가 자초아버지의 모습이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집안에서도, 또 집밖에서도 설 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동정여론까지 일고 있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으로부터 「97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은 김영식(36·다물자연학교 대표)씨는 『아버지를 초라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아버지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상가 25평의 결코 넉넉지 않은 공간에서 서점과 학교를 운영하고 아내, 두 아이와 함께 네 식구가 「작게」, 그러나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검소한 아버지, 근면한 아버지로 돌아가면 권위와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충고하는 김씨의 「좋은 아버지론」을 들어본다.
□대담: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
―올해의 아버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아버지들이 안팎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참으로 값진 상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수상소감은.
『함께 느끼고 고민하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 점이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 좋은 집과 비싼 옷을 사주지는 못했지만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알려 주려 노력했습니다. 제 뜻을 이해해준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버지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들은 피곤합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습니다. 애정과 관심도 돈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아버지의 무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성공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이에 아이들에게서는 소외되는 셈입니다. 오늘날 아버지의 위기는 결국 아버지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조차 마음의 문을 닫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터놓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우선 아이를 인격체로 인정해야 합니다. 92년 7년간의 군생활을 끝내려고 마음 먹었을때 큰 아이와 의논했습니다. 「아빠는 군인이 좋지만 훈련을 나가면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므로 제대하려고 한다. 제대 후엔 돈을 적게 벌지 모르기 때문에 용돈도 깎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용돈은 적어도 좋으니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더군요. 가족문제에 동참하는 경험을 하게 한 거지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마음을 열게 된다고 봅니다』
―이번 수상에는 좋은 부부관계도 한 몫 했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부의 모습에서 신뢰와 사랑등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일찍 들어올께」라고 쉽게 약속해 놓고 실제로는 번번이 술마시고 늦게 들어간다면 아이들도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물어린이 전문서점」과 「다물자연학교」는 어떤 곳입니까.
『94년 11월 경기 부천시 원종동에 처음 서점을 열었습니다. 평소 대형서점을 드나들면서 아이들에게 적당한 책을 구해주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전래동화와 창작동화, 환경 교육 자연에 관한 책 등 정서함양에 필요한 서적을 구비한 책방을 열게 됐어요. 다물자연학교는 일종의 대안학교입니다. 자연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알려주자는 것이지요. 거창한 것 같지만 서점 한곁의 조그마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여치집과 버들피리를 만들고 곤충과 함께 노는 방법도 알려주지요. 또 계절별로 직접 시골에 찾아가 썰매 지치기, 새끼꼬기, 토끼몰이, 소여물 끓이고 외양간 청소하기 등을 실습하게 합니다』
―자연학교를 열게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즘 아이들이 불행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세대는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교훈과 지혜를 체득했습니다. 한마디로 신나는 삶이었지요.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컴퓨터게임기와 햄버거, 피자 등 물질의 풍요속에서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황폐화하고 있어요. 작은 체험이지만 자연과의 만남은 회색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정서와 문화를 만들어 준다고 믿습니다. 가족단위 회원을 모집하고 있는데 이미 350여 가족이 회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오늘의 좋은 아버지가 되기까지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저는 아버지가 잠도 안주무시는 어른인줄 알았습니다. 항상 저보다 늦게 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셨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보면 이미 마당을 쓸고 집앞 골목까지 깨끗이 쓸어놓으셨어요. 아버지는 열차 기관사여서 생활이 빠듯한 편이었지만 우리들의 도시락도 싸주시고 장도 함께 보시고 냇가에서 놀아주시기도 하는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주셨어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삶이 행복했다고 기억됩니다』
―요즘 일각에서는 부모에게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대개 인내심과 예의가 없습니다. 창의력도 없구요.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부모가 그러하듯이 아이들도 모든 것을 물질로 해석하려고 하지요. 무엇보다 염치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부끄러운지를 알려주는 거지요. 버스안에서 떠들고 음식점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어야 해요. 또 늘 넘치도록 받기만 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고마워할 줄을 모릅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길러주어야 합니다』
―독특한 생활을 하시는 셈인데요. 아이들은 불만이 없습니까.
『목동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잘사는 친구집에 다녀와서는 가끔 「우리는 언제 아파트에서 살아요」하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우리 집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 집에는 없는 여치집도 있고 토끼장도 있지 않니」라고 말해주죠. 그러면 아이는 「맞아. 아이들이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해요」라며 맞장구를 치죠. 말하자면 무엇이 의미있는 것인지 깨달아간다는 얘기예요』
―바람직한 부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랍니다. 아이들에게 「작게 사는」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 항상 근면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흐트러진 자세로 비디오나 게임기에 열중하는 아버지는 아이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무말 없이 30분간 책을 봤어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딸아이가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도 책을 잡는거예요. 공부하라고 아우성 치기 전에 TV를 끄고 부모가 책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도 자연스레 공부와 친숙해질 겁니다』
-끝으로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공부 잘하라는 얘기는 안합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람, 더불어 살 줄 아는, 그리고 신나는 삶을 꾸릴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약력
▲61년 2월 충북 제천시 출생 ▲제천고 청주사대 사회교육과 졸 ▲85년 ROTC 소위임관 ▲92년 대위 전역 ▲94년 11월 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서 「다물어린이전문서점」 개설 ▲95년 정무2장관실·여성신문사 공동제정 제2회 평등부부상 수상 ▲86년 10월 최숙희(37)씨와 결혼. 아들 승헌(10·서울 월촌초등교 4년)군 딸 성대(성대·8·〃 2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