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대학 축제의 달이다. 최근 각 대학의 축제는 재학생들만의 폐쇄적 행사에서 벗어나 주민,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는 「열린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학교를 나온지 오랜 「쉰세대」일지라도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번쯤 모교나 인근 대학을 찾아 학창시절의 향수를 달래볼만 하다.대학이 밀집된 신촌은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에서 잇따라 축제가 계속되는데다 신촌문화축제(8∼11일)까지 겹쳐 한달 내내 들뜬 분위기가 이어진다.
5월 시즌을 여는 연세대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술과 향락으로 찌든 거리에 대학문화를 불어넣겠다는 「신촌 대학로」행사. 7일 하루 신촌로터리서부터 학교앞까지 차량을 완전통제, 이 길에서 대형벽화 그리기, 미술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사물놀이와 록음악, 대중가요도 함께 공연돼 대학문화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보여주게 된다. 또 학생들이 장애학우의 입장에서 등교길을 직접 체험한 뒤 「신촌 장애지도」를 그리는 행사도 있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순결서약식」도 의미있는 행사로 꼽힌다. 참가를 신청한 학생들은 몸과 마음의 순결을 맹세하는 서약을 하고 징표로 반지를 받는다. 분별없는 성개방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행사인 만큼 엄숙함이 묻어나오도록 동문 목회자들이 행사를 인도할 계획이다.
서강대는 16일 음악동아리 「소리나눔」이 KBS의 「열린음악회」를 본떠 「작은음악회」를 연다. 캠퍼스 여건상 한꺼번에 많은 학생이 참여하는 대형행사를 치르기 힘든 탓에 매년 최고 인기행사는 교내 곳곳에서 열리는 「장터」다. 각 과와 동아리들이 한 자리씩 차고 술과 먹거리를 저렴하게 파는데 밤이 깊어도 흥겨움이 넘쳐난다. 서강대는 15일 전야제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애니메이션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신촌지역 상인들이 주축이 된 「신촌문화축제」가 상업적 소비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 같은 날 「반신촌문화축제」로 맞선다는 계획이다. 이날 「이화광장」에서는 「교육환경권」을 주장하는 퍼포먼스와 노래가 공연되고 영화도 상영된다. 또 하숙집 아주머니와 동네 주민들의 노래 한마당잔치도 구상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립대의 「성년의 날」기념 행사도 이색적인 대동제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끈다. 성년을 맞이한 연인이 전야제 행사장에 참석하면 장미꽃 한송이씩을 선사받게 된다.
올해 각 대학의 축제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동포돕기」행사. 「북한동포돕기 한마음 대동제」가 열리는 경희대에서는 마지막날인 23일 노천극장에서 「내마음의 휴전선 거두고」라는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대학가의 단골 가수 및 노래패들인 안치환 「꽂다지」 「여행스케치」 등이 통일염원을 담은 공연을 펼친다. 경희대는 지역주민에게도 초청장을 보내 입장료로 1인 5,000원씩을 받아 모금된 돈을 역시 북한식량난 해소에 기부키로 했다. 이 학교 총학생회 기획부장 염임경(22·사학4)양은 『이번 축제는 통일을 바라는 모든 이 들에게 열려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도 대동제 마지막날 「북한동포돕기 콘서트」를 열어 입장료 수익금을 전액 북한동포를 돕는데 쓸 계획이다.
연세대 총학생회 문화국장 김석현(22·영문3)군은 『대학축제가 정치색 일변도로 변질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문자그대로 단순한 「축제」에 그쳐서도 안될 것』이라며 『축제는 대학다운 다양한 문화가 실험되는 창의적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캠퍼스 여론조사/“대학축제 구경꾼만 있고 주인이 없다”
『대학축제는 구경꾼만 있고 주인은 없는 무의미한 놀이판이다』
최근 「고대신문」이 현재의 대학축제문화를 비판하고 실종된 「대동문화」를 되찾자는 내용의 특집기사를 실어 주목을 끌었다. 고대신문은 「새내기의 눈에 비친 대동제」라는 기사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응원단(입실렌티) 공연 「지야의 함성」 말고는 도처에 널린 일일주점에서 「교주 아닌 교주」인 막걸리 마시기에만 열을 올린다』며 『그나마 「민중문화제」나 학술제같은 행사들은 열린공간에서 밀려나 안내 게시물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개탄했다. 이 신문이 최근 재학생 2백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동제 의식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이상(53.3%)이 「대동제 기간을 친구들과 개별적으로 보낸다」고 응답했다. 또 대동제 행사 참여열기가 낮은 이유로 ▲대중적 구심점의 부재(35%)와 ▲틀에박힌 행사(24.5%) ▲일방적인 행사기획(17.2%) 등을 꼽았다.<최윤필 기자>최윤필>
□내 추억속의 대학축제
◎손학규 서울대 65학번·보건복지부장관/열정으로 만든 엉터리 탈춤
1학년때 이화여대 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당시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젊음만으로 주눅들지 않던 때였다. 친구소개로 만난 여학생의 초청을 받았다. 군복을 물들인 유일한 외출복에 앞이 떨어져 발가락이 나온 군화차림을 보고 파트너의 입이 벌어진 것은 당연했다. 술로 어색함을 넘긴 그뒤로 만나지 못했다.
2학년때 문과대 학림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현재 언론인인 허술씨, 시인 김지하씨, 서울대 조동일 교수가 전통 민족문화를 재정립한다며 처음으로 탈춤을 공연했었다. 지금 보면 고증도 안된 엉터리였으나 나름대로 민족과 역사를 생각케 했던 그 분위기가 좋았다.
◎최열 고려대 68학번·환경연사무총장/운동권학생과 축제 “글쎄”
70년대 초반에는 교련반대, 3선개헌반대 등으로 대학가가 어수선했다. 특히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낭만적 분위기의 축제는 하나의 사치에 불과했다.
학군단에 들어간 4학년 축제때 모두 파트너를 데리고 오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도장으로 쓰던 학교안의 판자촌에서 잠을 자고 축제에 참가하던 때였다. 축제의 장을 이용해 시국토론이나 모의재판 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문화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73∼4년에 걸쳐 청년문화론이 유입되면서부터다. 요즘 대학생들이 자유분방한 축제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선배들의 피나는 민주화투쟁 덕분이다. 향락적으로만 치닫는 대학가문화를 보면서 선배들의 노력이 잊혀지는 것같아 아쉽다.
◎마광수 연세대 69학번·연세대 교수/날 바람맞힌 얄미운 파트너
70년대만 해도 축제는 동적인 마당이었다. 쌍쌍파티니 1일주점이니 직접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너무 정적이다. 연세대의 경우 그때 축제프로그램중에서는 「아카라카」정도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2학년 축제때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축제마지막날 파트너를 한명씩 데려와 쌍쌍파티를 열기로 했는데 바람을 맞은 것이다. 그날 우리 학과가 촌극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상금까지 타는 바람에 큰 술판이 벌어졌는데 나는 2시간이나 약속장소에서 파트너를 기다리다 술자리에 얼굴도 못내밀고 말았다. 그때는 파트너가 없으면 축제에서 「보이콧」당해 따로 놀러가야 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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