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편식 벗고 ‘교양’의 바다로/왕성한 지적욕구로 인문교양서 열풍 선도/역사서에서 과학책까지 섭렵/‘로마인 이야기’‘조선왕조실록’ 등 베스트셀러 좌우/출판시장의 몸통책읽기만큼 30대의 개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도 드물다. 20대 때 대학가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의 폭발적 붐을 일으켰던 그들은 30대가 된 지금 다시 최근의 대중적인 인문사회교양서 열풍을 주도하면서 우리 사회 독서의 흐름을 바꿔가고 있다.
30대의 독서편력은 그들이 지나온 이념의 편력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대학시절 이념성 사회과학도서는 그들에게 「바이블」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소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의 몰락은 이념시대의 종말과 함께 독서문화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30대에게 이념은 이제 추억의 저편에 있을 뿐이며, 그들이 부대끼는 현실은 자본주의 질서 속에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요구하고 있다.
이념의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그들의 최대 관심사 또한 국경없는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남느냐」로 변했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명예퇴직의 고용불안속에서 고대 로마의 영웅사를 다룬 시오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돌연 30대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혼돈의 시대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시대로 만든 영웅들의 이야기는 바로 30대가 꿈꾸는 이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밀리언셀러가 된 「소설 동의보감」 「로마인이야기 시리즈」 등 최근 1∼2년 사이에 역사읽기에서 시작된 인문사회교양서에 대한 폭발적 수요는 30대가 단연 주역이다. 학문영역에 머물러 있던 역사 문화인류학 물리학 자연과학 등을 대중적 교양의 범주로 끌어내린 계층이 30대라는데 출판관계자들은 이론을 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 읽었다기 보다는 읽기를 강요받았던 세대였던 30대가 지금까지의 편향된 지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월간 「출판저널」 편집장 김지원(37)씨는 『독재정권의 억압과 남북분단 등의 사회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30대는 편향된 이념에 따른 사회참여를 강요당했다. 그런 그들이 90년대의 자유스런 사회분위기를 타고 다양한 지적 욕구를 발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발빠른 출판사들이 30대의 목마름을 정확히 파악, 수요에 적절히 부응했던 것도 인문사회교양서의 붐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 백원근(31)씨는 『80년대 비판서를 냈던 출판사들이 대중적이고 의미있는 책을 모색하던 중 「알기 쉬운」 「재미있는」 「다시보는」 등의 접두사가 붙은 기초입문서들을 내놓았는데 30대의 호응으로 의외의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감을 얻은 출판사들이 최근에는 건축 미술 인물사 중심으로 한 차원 놓은 입문서들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문사회교양서 붐은 영웅사 중심의 역사읽기가 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생직장이 무너진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사회의 핵심세력이 된 30대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고대 영웅들에게서 찾고 있다』고 분석한다. 「로마인이야기」 「람세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선풍적인 인기도 이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창작과비평사의 한기호(39) 영업기획실장은 『현재 부드럽고 쉬운 역사읽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독서성향은 앞으로 생활사와 사상사로 옮겨갈 것이 확실하다. 더 나아가 인문사회학의 전 분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서시장에는 벌써 「조선시대사람 어떻게 살았나」 등 생활사, 딱딱하기만 했던 근·현대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그들의 삶을 통해 쉽게 접근한 시리즈물의 제작이 본격화하고 있다.
교보문고 기획조사부 위성계(35) 대리는 『과거 직장인들이 주로 읽던 책은 처세와 성공술, 재테크, 경영학 등 실용서였다. 그러나 세계화시대가 열리면서 그들의 독서영역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30대는 그들의 고급 독서성향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의 예민한 감수성에 주로 호소해오던 출판경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정덕상 기자>정덕상>
◎현암사 편집주간 형난옥씨/‘좋은 책’ 고집하는 책쟁이/환경천체 등 인기없는 분야개척 200여권 출간
현암사 편집주간 형난옥(38·여)씨는 베스트셀러 한 권에 승부를 거는 요즘의 출판풍토에서 끈기있게 새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고집스런 「책쟁이」다.
90년 편집주간으로 발탁된 형씨는 당시로는 모험이었던 환경분야 서적에 눈을 돌렸다.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이란 책을 기획했으나 출판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생소하고 인기없는 분야라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 뻔하다는 선입견 때문. 사실 형씨 본인도 자신이 없었으나 소중한 자연환경이 산업화의 뒷전에 밀려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끈질기게 출판사를 설득했다.
다음으로 형씨가 눈을 돌린 것은 우리 것, 우리 문화. 「우리꽃 백가지」 등을 시리즈로 발간하면서 독자들이 보여준 꾸준한 관심이 형씨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철학서적 「소피의 세계」 등 그의 손을 거쳐 나온 200여권의 책은 모두 1만권이상씩 판매고를 올린 스테디셀러가 됐다. 천체이야기인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도 그가 일궈낸 작품이다.
80년 숙대 학생회장으로 옥살이까지 겪은 운동권 출신인 그는 휴학하는 동안 출판사에서 허드렛일을 한 것이 이 일에 매달리는 계기가 됐다. 대학시절에 그토록 정열을 쏟았던 사회변혁운동을 이번에는 출판운동을 통해 사회에 반영해 보겠다는 나름대로의 시도였다.
형씨의 또 다른 꿈은 「장난감보다 더 장난감같은 아동도서」를 만드는 것. 아이들이 장난감을 만지며 느끼는 재미를 책에서도 느끼게 하자는 의미다. 형씨는 『앞으로 독서계는 더욱 다양하고 세분화할 것』이라며 『폭넓은 방향에서 기획하되 인간철학에 바탕한 책들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다.<김정곤 기자>김정곤>
◎30대의 독서성향/기억에 남는 책 1위 조정래 ‘태백산맥’
30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었으며 다음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전국의 학생, 성인 2,9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위는 「삼국지」(이문열)였으며, 「토지」(박경리) 「아리랑」(조정래) 「인간시장」(김홍신)이 공동 4위로 조사됐다. 「좁은문」(앙드레지드)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어린왕자」(생떽쥐베리) 「대지」(펄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렛 미첼) 「천년의 사랑」(양귀자) 「야인」(홍재규)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등도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혔다.
한편 30대는 1년동안 9.8권의 책을 읽어 전체 연령별 평균 9.1권에 비해 독서량이 다소 많았다(잡지 만화 참고서 제외). 20대는 14.5권, 40대 7.3권, 50대 이상은 4.2권의 책을 읽고 있다.
95년보다 독서량이 줄었다는 응답자중 30대는 그 이유에 대해 81.2%가 「시간이 없어서」라고 응답했으며, 40대 69.6%, 50대 이상은 27.6%로 조사됐다. 「읽기 싫고 습관이 안돼서」라고 대답한 30대는 5.9%로 20대(6.3%)보다 낮았다. 이는 20대에 비해 훨씬 활자문화에 익숙한 30대가 독서시장의 주된 소비계층임을 보여주는 것이다.<정덕상 기자>정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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