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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시대의 개막:하(영국의 선택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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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시대의 개막:하(영국의 선택 ’97)

입력
1997.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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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체성 확립 최대과제/유럽통합 참여냐 거부냐 선택기로/소수민족 독립 등 내부도전도 골치국가 정체성의 위기. 영국의 정치학자들은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닥칠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말해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가 그에게 부여된 최대의 역사적 소명이라는 것이다.

블레어 총리가 18년 보수당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우선 영국경제는 60∼70년대 퇴락의 늪에서 벗어나 성장발전의 기틀을 되찾았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제조업투자 저축률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들이 순조로운 상향궤도에 올라있다.

다소 높은 실업률, 정부재정적자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과거 보수당 정부초기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상태다. 블레어총리 자신도 선거운동기간중 이를 인정하고 집권하게 되면 현재의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회상황도 2차 대전이후 전례없이 안정돼 있다. 국민의 도덕윤리가 고양돼 있고 사회질서와 기강도 바로 잡혔다. 한때 영국과 동의어로 여겨졌던 노조파업도 이제는 과거의 유물로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국가의 안정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블레어 총리에게 「국가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안에서는 소수민족 문제가 국가통치범위를 재설정하도록 압력을 넣고있고, 밖에서는 유럽통합문제가 국가주권을 이양토록 촉구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정체성 위기의 실체다. 물론 이 문제는 과거 정권에서도 골칫거리였던 것으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국가를 우선 살려놓고 보자는 국민적 합의하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압력의 강도도 적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대륙쪽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럽통합의 진행상황이 영국에 동참이냐, 거부냐 가부를 선택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당장 내년초에는 유럽연합의 단일통화체제에 영국의 가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영국이 유럽통합에 더이상 발을 담그지 않는다면 별 문제이나 현실적으로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블레어 총리는 국가주권의 기축을 뿌리째 재검토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있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이번 정권교체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방에서 자치확대 내지 독립요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이 노동당은 선거기간중 발표한 정강에서 이들 지방의 자치확대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시했기 때문에 블레어 총리는 이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런던=송태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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