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재벌은 극명하게 상반된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하나는 국민소득 1만달러의 경제입국을 이끌어온 경제발전의 견인차로서 평가의 대상이다. 다른 하나는 그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를 여전히 천민자본주의의 후진형으로 맴돌게 하는 정경유착의 주체로서 비판의 대상이다.
나라 전체를 파국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한보파문이나 김현철커넥션의 비리양태는 대재벌들이 연루된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사건」의 와중에서 이루어졌고 그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일부 재벌들의 기업윤리의 현주소가 과연 어디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다.
특히 한보와 김현철커넥션에 관련된 기업들의 비리의혹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권력의 외압에서 연유됐다기 보다는 당해 재벌들이 적극적으로 권력에 접근하고 편승해 경제적 이권을 챙기고 사법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점에서 그 부도덕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기업인들은 그동안 숱한 정경유착의 비리와 범법행위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정치적 사법적 관용을 받아왔다. 그같은 관용에 대해서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 역시 기업들이 우리 경제발전에 기여한 역할과 권위적 권력하에서의 불가피했던 사정, 위기국면의 경제상황까지를 고려해 이해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간 기업들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자정선언 등을 통해 과오의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전경련은 그 징표로 96년 2월 기업윤리헌장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한보와 김현철사건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드러나고 있는 기업비리의 양태들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넘어선 모멸감을 안겨주고 재벌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도지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재벌들의 경영행태가 더 이상 사회의 관용과 이해를 구하기에도 구차한 지경에 이른 셈이다.
마침 전경련을 중심으로 일련의 사건을 교훈삼아 기업윤리를 바로세우자는 자발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때가 때인 만큼 그같은 움직임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윤리선언이냐는 사시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때 가속화되는 개방경제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이 땅에서마저 터전을 잃을지 모른다. 솔직히 치열한 국제경쟁속에서 우리 기업이 열악한 기술과 품질, 재무상태로도 그나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우리 기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애정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경련이 만들고자 하는 기업윤리강령에는 기업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경영을 민주화하고 투명하게 하는 뼈를 깎는 각오와 실천장치가 가시화돼야 할 것이다. 한보사태나 김현철커넥션이 보여주듯 재벌경영의 민주화 없이는 진정한 민주화나 경제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명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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