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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바란다/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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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바란다/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입력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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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노동절/계급공존 시대 발맞춰 투쟁중심 구태 벗어나 정책형 노조로 변신을오늘은 세계의 노동절이다. 노동절은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하여 1886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총파업과 투쟁정신을 기리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어 올해로 107번째가 되었다. 한국정부가 오랫동안 고수했던 「근로자의 날」 대신 세계노동기구가 공식화한 메이데이를 이 땅에서도 기념하게 된 것은 민주화의 큰 수확이다. 더욱이 올해는 민주화 불꽃을 지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동안 노동계는 굳게 닫힌 노동정치의 문을 열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으며, 특히 작년 하반기 이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투쟁일변도의 구태에서 벗어나 대국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성숙한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메이데이의 기본 정신은 「자본가의 억압을 타파하고 정의를 구축」하는 데에 있었지만 자본가의 혁신과 물질적 번영, 무엇보다도 생산관계의 질적 변화에 따라 「계급투쟁」이라는 초기적 면모는 점차 「계급타협」으로, 최근에는 「계급공존」으로 이동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급공존 이데올로기는 격화하는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세계중심국가들의 공통된 노사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조합 역시 「투쟁형」에서 「정책형」으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정책형 노조는 다음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노조는 이제 세계시장과 국민경제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어야 하며, 소속기업의 경쟁력 상태를 항시 점검해야 한다. 기업경쟁력이 약화하면 노조경쟁력도 저하된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거리투쟁이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민간부문의 자율성이 증대하는 민주화 공간에서는 정책개발과 실행능력의 배양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둘째, 정책개발 능력은 노조행위의 합리성을 제고시킨다. 국민경제의 재벌의존도가 높고 대공장이 거의 조직되어 있는 한국에서 노조의 합리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공장의 파업은 하청업체에 연쇄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중소자본가의 도산을 좌우할 만큼 위력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셋째, 지불능력이 높은 재벌기업의 임금인상이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하고 동종산업의 수많은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온 종래의 폐단을 일소하는 노조의 독자적 임금정책 개발도 시급하다. 임금인상이 실업률 증가, 즉 취업불안정을 촉발한다는 선진국형 일반법칙을 무시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 최근 증가일로에 있는 실업률을 제어할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성숙한 노조의 면모는 아닐 것이다. 실업률의 증가는 노조의 조직기반을 약화시키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의 할애나 임금인상 자제와 같은 자구적 노력을 통하여 정리해고제의 부담을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넷째, 국가적 차원에서 노조가 경제적 정치적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먼저 「사회조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사회조직이란 작업장에서 개별 노동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일상생활의 고충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생활조직으로서의 노조를 지칭한다. 그것이 결여된 상태의 정치화는 자칫 잘못하면 정치권력자의 동원세력으로 타락한 남미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유연성」과 「연대력」의 조화이다. 세계국가들의 경영혁신이 시장과 자본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요즘의 추세에서 경직된 연대력에의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국민적 손실을 자초할 뿐아니라 계급공존과 협력의 길을 훼손할 우려를 내포한다. 세계중심국가의 노조가 그러하듯이 유연성을 향하여 열려있는 연대력 배양이 중요하다.

계급공존과 협력의 이데올로기로 복지민주주의를 꽃피운 스웨덴에서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적이 아니라 친구로, 성장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관습이 오래전에 정착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민주적 노사관계와 분배적 정의를 위한 정부와 기업인들의 노력이 주효하였음은 물론이다. 아직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각 영역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풍조가 불식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노동계라도 우선 자체변신을 위한 각오를 새롭게 다질 시점이다. 이것이 개정노동법이후 처음 맞는 메이데이의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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