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적십자사대표들이 대북식량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3일 베이징(북경)에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110여 차례의 남북적십자사간의 접촉이 모두 판문점과 서울·평양에서 이뤄졌듯이 이번 회담도 한반도에서 열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회담장소로 베이징을 고집하는 북한의 주장을 수락한 것은 시급한 동포구원이라는 인도적 차원에서 포용했다고 볼 수 있다.사실 북한의 식량사정이 김일성 사망이후부터 악화된 것을 감안하면 남북적십자회담은 너무 늦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북한의 남한배제라는 정치적 전략 때문이다. 거듭되는 흉작과 수해로 인한 식량난에 직면한 북한은 유엔 등 국제기구와 전세계 각국 및 적십자사에 대해 식량과 구호품지원을 요청하면서도 한국은 제외시켰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와 국제적십자사(ICRC)를 통해 한국정부와 적십자사가 보낸 식량등을 받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 왔던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과 대화를 거부해 온 북한이 적십자회담에 동의한 배경은 짐작할 수 있다. 대규모 식량지원을 전제조건으로 한 4자회담 참석이 한미양국으로부터 거절당하자 워낙 화급한 식량난을 해소하려 적십자회담에 동의한 것이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4자회담과 관련한 식량지원보다 부담없는 적십자사쪽의 지원을 선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정부의 허용결정후 활기를 띠고 있는 남한사회단체와 국민들의 북한주민 돕기운동에 기대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식량난은 이제 세계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역에 따라 1∼2년전부터 식량배급은 완전 중단되어 지난 연초부터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현지취재를 통해 딸을 팔고 인육까지 먹는다는 설이 파다하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대체로 2백만∼3백만톤의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게 유엔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어쨌든 이번 회담은 의제가 「대북식량 및 구호품지원논의」로 한정된 만큼 남측은 굶는 북녘동포들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식량과 약품·의류 등을 최대한 지원하는게 바람직하다. 또 북측에 지역별로 정확한 식량사정자료를 제시할 것과 오직 주민에게 지급하며 일체 군사목적으로 전용않는다는 약속을 요구해야 한다.
이와함께 남한의 관민이 모은 식량과 구호품 등을 반드시 남한의 선박으로 운송하며 남측 적십자요원들이 주민들에게 지급상황을 볼 수 있도록 요청해야 한다. 84년 수해때 북측의 식량·시멘트 등의 지원에 대한 답례이자 민족의 공생공존의 정신임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식량지원이 본격화되면서 남녘의 이산가족이 북의 혈육에게 식량과 구호품을 개별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강구해야 한다. 물론 식량지원과 적십자회담이 진전될 경우 남북이산가족상봉 등 인도적 문제들을 당연히 제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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