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신한국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는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의 윤곽이 잡히면서 실명제 보완방향이 실명제의 기본골격마저 훼손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한마디로 금융실명제의 보완취지가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어 이대로 실명제가 바뀐다면 오히려 검은 돈의 유통을 조장시킬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금융기관 입출금이나 송금시 실명확인을 면제하는 금액의 기준을 대폭 상향하겠다는 발상이다. 공납금 등을 제외하고 30만원 이상의 금융거래시 실명확인토록 하는 규정은 우리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많은 불편을 주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기준금액을 너무 높게 책정하는 것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신한국당에서는 미국(3,000달러, 약 270만원)이나 독일(2만마르크, 약 1,000만원)의 예를 들어 그 타당성을 찾으려는 모습이나 이들 나라와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적 풍토나 금융거래에 대한 문화적 기반이 현격히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엄격한 실명제하에서도 한보사태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과 검은 돈의 거래행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또 미성년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자금이든지 자금출처조사나 세무조사를 면제하려는 접근은 기존 실명전환자들과의 형평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세무행정의 질서를 흐트리고 과소비 등 이미 제기된 실명제의 부작용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
정부 여당은 특히 아직도 미실명상태인 예금(약 3조3,000억원)에 대해 실명전환시 과징금최고한도를 현행 60%에서 40%로 낮추려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진짜 검은 돈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설령 이들 자금이 실명전환된들 자금의 성격을 유추할 때 생산적 자금이 되기보다는 소비자금화하거나 불건전용도로 사용될 개연성이 더 클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 아니겠는가.
긴급명령으로 돼있는 금융실명제를 일반법률로 대체하고 완화하려는 원래취지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당시 개혁적 분위기에 편승된 과거지향적이고 사정적인 요소를 제거해 경제적 성격을 강화해 보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얼굴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지하자금을 일정한 기준과 절차를 통해 산업자금화하고 적정한 세금만 내면 돈의 출처조사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 자금의 흐름을 생산적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같은 방향은 일부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위기국면의 경제를 타개해야 한다는 분위기와 맞물려 일리있는 접근으로 공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제껏 실명제에 따른 경제 사회적 비용을 치른 마당에 당장의 불편함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금융실명제의 대강을 그르쳐선 안된다. 경제행위의 투명성을 높여 지하경제를 축소하고 조세의 형평성을 제고한다는 금융실명제의 기본골격은 미래지향적으로 더욱 강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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