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Independent 4월28일자한·영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갖가지 노력이 한창 진행중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미 잊혀진 사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새삼 축하하려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겠지만 97년은 한·영 수교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올 여름 대영박물관에서는 한국예술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며 많은 투자사업도 예정되어 있다. (한국은 약 3억파운드 상당의 영국 무기를 구입하려 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러한 교류행사의 열기는 한·영간 미미한 역사적 관계를 생각할 때 놀랍기만 하다. 접촉 200주년을 기념하는 열기에 비해 두 나라간의 첫 역사적 접촉은 매우 애매하고 우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1797년 윌리엄 브로튼 대령은 탐사선 프로비던스호로부터 부산에 하선하였으나 한국 왕실로부터 즉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식 외교관계는 그로부터 86년후 맺어졌다. 1885년 영국 해군은 하선 허락없이 한국의 한 섬을 점령, 2년간 기지로 운영하였다. 그것이 양국간 역사적 인연의 단초이다.
오늘날 서울은 문화적인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경제적 중요성은 그 어느나라 못지 않다. 한국은 세계 11위 무역대국이다. 만약 경제성장이 현수준을 유지한다면 한국경제는 2030년이전에 영국 경제를 능가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이 그리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멀지 않은 것으로 예견되는 북한의 붕괴가 큰 짐이 될 것이다. 북한의 붕괴가능성과 그것이 한국에 줄 부담을 생각할 때 생각만큼 빨리 영국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7,000만 소비자로 구성된 통일된 한반도는 훨씬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게 97년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홍콩을 중국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다. 한·영간 교류열기가 시사하는 잠재적 메시지의 하나는 영국의 홍콩 지배 종료가 아시아에서의 영국 영향력의 종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브로튼 대령의 첫 한국방문을 기념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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