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등 고시관련 강의엔 청강생까지 몰려 북새통/졸업논문 대신 토익·토플성적 요구도대학에는 대학생 대신 취업준비생만이 남았다. 고시와 토플(TOEFL)·토익(TOEIC)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물결은 대학을 거대한 취업준비학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도서관 책상마다 고시 서적과 영어 교재가 쌓여있고 전공서적이나 인문·사회과학, 교양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대 도서관은 시험때를 제외하고는 절반이상의 자리를 고시생이 차지하고 나머지도 대부분 토익·토플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차지한다. 전공공부를 하는 학생이 민망할 지경이다. 고시와 토익 열풍에 전공과 교양이라는 대학교육의 기본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교육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응답학생의 64%가 취업준비에 가장 몰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학문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대답을 한 학생은 13.5%에 그쳤다. 서울대 인문·사회대 학생 30∼40%가 고시공부에 매달려 있고 연세대나 고려대의 경우도 고시·공인회계사·언론사 시험 등을 준비하는 학생이 절반을 넘는다. 서울대 경제학부 유상록(21)씨는 『군대에 가지 않은 친구들 대부분이 고시공부에 매달려 있어 과전체가 고시학원과 같다』고 말했다. 법학과 등의 고시관련 강의실에는 청강생까지 몰려 들어 발디딜 틈 없이 북적대지만 인문·사회 교양과목 강의실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서울대 법대 김동희 교수는 『한 강의 수강생이 270명에 달해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정상적 수업이 불가능하다』며 『학생들이 전공을 버리고 고시에만 매달리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문제가 중요해지다보니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열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문대 대학원생은 농촌 총각보다 더 장가가기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다.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이상봉(30)씨는 『올해 대학원 입학생 20명중 본교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며 『공부를 해도 전망이 없으니 고시나 취업 등 다른 방면에 눈을 돌리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토익 등 영어 열풍도 거세다. 지난해 토익에 응시한 대학생수는 33만6,000여명. 매년 2배 가까이 늘어 나고 있다. 서울대 「대학신문」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생의 64.2%가 앞으로 토익시험을 치를 계획이라고 응답했고 전공보다 영어공부를 더 많이 한다는 응답도 32.8%에 달했다.
고려대 경영학과와 부산대는 졸업 논문 대신 토익이나 토플 성적을 졸업 요건으로 내걸었고 연세대 의예과도 토익점수 취득을 본과 진학 요건으로 규정, 대학내 토익열풍을 조장하고 있다. 연세대 상경계열 김도희(20·여)씨는 『토익 성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고 취업에서도 절대적인 비중을 두기 때문에 영어 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철학과 김남두 교수는 『학문 실종 및 취업 학원화 현상으로 대학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과 지원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간섭 절대사절” 개인주의 판치는 하숙촌/입방식·오픈하우스 옛말/같은방 써도 전화는 따로/아예 원룸·오피스텔 진출도
서울 이화여대앞의 한 전문 하숙집. 4층짜리 건물에 층마다 방이 스무개 남짓하고 100여명의 학생들이 북적대는 「초과밀」공간이다.
그런데도 하숙생끼리의 교류는 거의 없다. 『한달 내내 얼굴 한번 못 본 식구들도 많아요. 간섭한다고 할까 봐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럽죠』 신촌서만 10년째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다.
달라진 하숙촌 문화의 한 단면이다. 개인 욕실, 개인 전화는 물론 컴퓨터 통신용 회선까지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대학가 하숙집에선 예전 하숙집의 미덕이던 따스한 인정과 인간관계가 기업형 하숙집의 합리적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돈독한 선후배관계, 입방식, 오픈하우스도 옛말이 돼 버렸다.
군에 갔다 와 이번 학기에 복학한 경희대 3학년 K씨. 『같은 방을 쓰는 동료끼리도 자기 전화를 따로 놓아요. 내것, 네것 구분이 확실하죠. 심지어 간단히 말로 전할 수 있는 것도 방문앞에 메모로 남기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러니 저녁식사 후 술자리 같은 건 아예 꿈도 못꾸죠』
아예 하숙집을 벗어나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 아파트 등에 둥지를 트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얼마전만해도 오피스텔이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웬만한 가전제품에 가구류까지 기본으로 제공되는 「퍼니처드 원룸 시스템」이 특히 인기다. 연세대와 홍익대에서 가까운 서울 서교동, 연남동 일대에는 「원룸촌」이 형성돼 있다. 경제사정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은 대개 고시촌이나 독서실을 찾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간섭받지 않고 살겠다는 것은 공통이다.
이처럼 「나 홀로」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요즘 대학생 대부분이 「자기만의 방」을 쓰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 그만큼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욕구가 높은 것이다. 홍대앞에 있는 빌라를 전세내 작업실 겸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미대생 C씨는 『누군가가 내 생활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꺼림칙하고 원하지 않는 것도 해야하는 공동생활에 대한 부담이 커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식당, 빨래방 등 하숙집 기능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 주는 각종 편의시설의 존재와 물가상승에 따른 하숙비 인상도 큰 이유로 꼽힌다.
변하고 있는 것은 하숙촌 문화만이 아니다. 깔끔한 개인주의, 상호 불간섭주의는 비단 대학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사회 전반의 추세이다. 그러나 변하는 하숙촌 풍경에 대한 아쉬움은 단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과 어울림, 때때로 격렬한 논쟁을 통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숙해 나가야 할 대학생들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흔들리는 사제관계/학점만 후하면 ‘인기’교수/마주쳐도 인사않기 예사/주차공간 놓고 승강이까지
상아탑의 양축인 교수와 학생 사이의 건전한 관계가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과 제자에 대한 교수의 은은한 사랑은 자취를 감추었다. 『학점을 따려는 수강생과 강의로 돈을 버는 직업인만 남았다』는 비판을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20일 서울대 사회과학대 게시판에는 『자동차 등록증(주차증)을 훔치거나 변조하다 발각되는 학생은 인적사항을 공고하고 「근신」 이상의 징계처분을 내리겠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학생들이 교수 주차장 승용차 유리를 깨고 등록증을 훔치는 사고가 빈발해 나온 조치였다. 사회대의 한 교수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혀를 찼다.
학생들에게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찾아 보기 힘들다. 『야, 걔 학점 잘 주냐?』 『강의는 그럭저럭 하는데 학점은 별로야』 학생들이 예사로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모자를 쓴 채 강의실에서 졸다가 지적을 받으면 아예 강의실에서 나가 버리는 학생, 캠퍼스에서 주차 공간을 놓고 교수와 승강이를 벌이는 학생….
교수들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도 강의실 밖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길이라도 비켜 주면 다행』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한 서울대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개·돼지만도 못하다』고 거침없이 비난했다. 『윤리 의식이 있어야 「인간」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요즘 학생들은 도대체 그런 게 없어요. 위 아래도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도 없습니다. 짐승과 다를 바 없죠』
「존경」을 받는 교수가 강단에서 사라지고 있는 대신 학점을 잘 준다는 이유로 인기를 끄는 교수가 늘어나고 있다. 강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학점이 후한 교수의 강의에는 늘 학생들이 가득하다. 고시 과목을 「쌈박하게」 정리해 주는 교수의 강의실은 열기가 가득하고 취업을 잘 시켜 주는 교수의 연구실은 항상 북적댄다.
기업체 쪽으로 안면이 두텁고 학계에서도 발이 넓다는 A대의 K교수. 그는 매년 8∼9명의 학생들을 S그룹, H그룹 등에 취직시키고 일자리가 없어 떠도는 석·박사들을 지방대학 전임강사나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소에 밀어 넣는 「재능」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연구실은 대학원생들로 붐비고 명절때는 학부생들까지 양주 등 선물을 들고 와 인사를 한다.
소위 명문대일수록 「사제관계 실종」 현상은 심각하다. 서울대와 한 지방대에 출강하고 있는 임모(60) 교수는 『서울대에서는 강의실 앞에서 만나도 인사를 하지않는 학생이 많지만 지방대 학생들은 안면이 없어도 마주치면 바로 고개를 숙일 정도로 아직은 예의가 바르다』고 말했다.
K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의 무례만을 탓할 수는 없다』면서 『이름도 모르는 교수들도 있는 판에 학생들에게만 무조건 예의를 차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학생들 탓만 하겠는가?
대학생들의 행태와 문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대학이라면 모름지기 대중문화를 선도할 만한 역량과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데도 「요즘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소비 지향적이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줄 모르고 그저 고시 공부나 취직 공부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나 역시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학의 취직학원화, 도서관의 고시원화에는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도서관의 고시원화에 기여하는 것은 이미 학교를 졸업한 「무적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요즘 아이들」만 탓하는 것은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 재학생들은 과거보다 늘어난 학과공부 부담 때문에 정신이 없다.
소위 「모래시계 세대」가 대학생일 때처럼 학사주점에 모여 무언가를 갈구하며 민중가요를 부르던 분위기가 아쉽다는 얘기라면 요즘 아이들도 할 말은 많다. 그들도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시공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래시계 세대」가 유행시킨 것 아닌가. 젊은 시절 사자후를 토하던 수많은 운동권 영웅(?)들이 고시를 통해 제도권에서도 출세하는 것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지름길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이 특별히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운동장에서 주책없이 학생들과 축구하며 뛰어 노는 교수로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신입생들보다는 오히려 고학년이, 고학년보다는 대학원생이, 그중에서도 나이가 들 만큼 든 「아저씨」들이 축구를 지저분하게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발길에 채여 나뒹굴 때마다 『다시는 이런 놈들과 절대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입생들은 몰라서 반칙을 하지만 「아저씨」들은 일부러 한다. 그러니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 오히려 「요즘 아저씨」들이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이 개성이 뚜렷하고 주관이 똑바로 선 바람직한 신세대인가? 신세대의 「개성」이란 것은 알고 보면 얄팍한 상술에 흔들리는 집단환각성 유행인 경우가 많고 그들이 내세우는 강한 자기 주장 또한 저열한 이기심과 인간적 미숙함에서 기인한 자기합리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입시열풍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춘기가 오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요즘 대학생들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요즘 아이들」도 「아이들」인 만큼 여러가지로 미숙하고 불안정하며 방황하고 흔들린다. 그것이 때로는 폭주족의 난동으로, 때로는 「버르장머리 없음」으로, 때로는 재치있고 발랄한 신세대만의 감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요즘 아이들이 싱그럽고 순수한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요즘 어른들」의 편견없는 관심과 따뜻한 애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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