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주변에서 닥쳐오는 거센 도전과 시련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외부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개인은 의기소침해지고 기업은 의욕과 방향을 잃으며 정부는 신뢰와 권위를 얻지 못한다. 국가적으로 볼 때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이다.국민들은 「한보청문회」를 앞두고 의혹과 불신이 풀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온통 무기력한 질문과 무성의한 답변으로 의혹은 의혹대로 커지고 순진한 기대가 또 한번 배신당함으로써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맛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정치 경제 사회 각계가 전반적으로 부정부패에 물들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탕주의와 편법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깊은 좌절감에 젖게 된다. 도대체 신명나는 일이라고는 없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한보사태 뿐 아니라 현실을 알려주는 경제지표가 우리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한다. 우선 고비용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저하에 따라 수출은 줄고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100억달러이던 외채가 올해말에는 1,40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투자의욕 감소로 설비투자율은 올해들어 2.4%로 떨어졌다. 반면 실업률은 지난해 2.0%에서 지난 2월에는 3.2%로 껑충 뛰었다.
게다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이후 외국의 통상압력은 우리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이제 2000년대의 시작이 1,000일도 안남았는데 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 어둡고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여기서 힘들다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가.
얼마전 퇴근길에 들른 포장마차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들려준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10년 가깝게 포장마차를 운영해 온 아주머니는 가족생계를 꾸리는 것은 물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3명에게 장학금까지 주고 있다고 했다. 장사가 잘 돼서가 아니고 근검절약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앞으로 선진국 진입의 관건은 중산층이상의 국민들이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는데 달려있는게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 신발끈을 고쳐매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국민이 이를 실천하려면 국가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먼저 한보의혹의 실타래부터 낱낱이 풀어내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관성있고 투명한 정책을 펴는 동시에 엄격한 규제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흩어진 민심을 모을 수 있고 기업들이 정부를 믿고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기업은 기술개발과 품질개선으로 국제경쟁력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생산성 향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건설업계의 경우 올해부터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위기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각종 건축공사에서 국내업체보다 외국업체가 선호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 결과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건설사들은 외국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시공, 사후감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마무리 짓는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사실 30년전만해도 우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 기업, 근로자들이 한마음으로 매진, 오늘날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정부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기업활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기업과 근로자는 중동의 모래바람을 헤치고 오늘의 경제를 키워냈다. 지금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보다는 훨씬 좋은 여건이다. 모두가 다시 한번 힘을 합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면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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