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작가… 미술행정가/그틈새 한해 300점 작업/‘욕심’ 많은 그의 관심사는 한국적 형태미+색채미학화가 이두식씨를 만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외국 여행도 잦은데다 국내에서도 미협 이사장으로, 대학교수로, 작가로 늘상 일에 부대낀다. 하지만 누가 만나자는 청을 하면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성미라 일은 더 늘어나고 그를 만나야 하는 사람의 불평은 더 커진다.
한국미술협회와 외무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해외순회전 전시를 위해 스위스를 방문했다 귀국한 것이 지난 23일 밤.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이날 밤과 이튿날 밤을 꼬박 새워 그림을 마무리했다. 25일부터 5월16일까지 강남의 「표화랑」(02―543―7337)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 내보낼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25일 저녁에 마련된 개인전 개막식에선 그는 좋아하는 술도 자제했다. 26일 아침 일찍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개최된 마니프국제아트페어에 작품 설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표화랑에선 『그림에 물감도 안마르겠다』며 다급해 했고, 마니프 측에서도 『25일에라도 작품 좀 걸어달라』며 통사정했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토록 바쁜 틈을 쪼개서 한 해 300점을 그리는 이두식씨는 요즘 더욱 바쁘다. 그가 지난해부터 작업해온 로마 포폴로광장 부근 프라미니오 역에 설치될 벽화작품은 5월9일 완공된다. 타일 모자이크로 제작되는 가로 14m, 세로 2m 크기의 벽화가 로마 3대지하철 역중의 한 곳에 번듯하게 자리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또 6월과 8월엔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순회전이 예정돼 있다. 3월말 로마, 4월초 남북작가전 참석차 오사카(대판), 그리고 최근 스위스 등 올들어서만 세 번의 해외 나들이를 했지만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산더미이다. 하루 4시간 잠을 자는 데도 시간은 늘 모자란다.
『행여 작품에 소홀해지지는 않나』 혹은 『다작이니까 작품에 쏟는 정열이 과작 작가만 못한 게 아니냐』고 물으면 그는 이내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정색을 하며 이야기한다.
『현대미술 작가는 작품을 「남발」해도 괜찮다. 작가가 사진기처럼 무엇을 모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생각과 정열을 담아내면 된다. 더욱이 시간과 작품의 수준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국내외에서의 그의 작품의 인기를 감안하면 그의 말이 꼭 자기 방어적 논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본능을 자극하는 감각적 그림이 많다. 형태미보다 색감으로 느낌을 표현해왔다. 이런 감각적 분위기 때문에 외국인도 쉽게 공감하는 것 같다』
그가 표현하려는 감성은 어떤 것일까. 『우리 가슴 속에는 아름다운 색채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다. 그것은 서럽도록 화려한 꽃상여의 색, 궁중의상, 단청의 빛깔, 폴 클레의 색추상을 능가하는 밥상보, 화각장의 은은한 색채 같은 것들이다. 다만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들이 이러한 색의 발현을 막는 것이다』 서양화가이면서도 탱화 모으기를 취미로 삼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물감으로 아크릴을, 붓으로 동양화의 모필을 사용하는 것도 발색에 대한 그의 집착 때문이다. 요즘 그의 최고 관심사는 잘쓴 서예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붓터치와 은은한 동양화의 발묵법. 「땅거미」 「저녁」 등 표화랑 전시에 내건 작품들은 고운 캔버스에 물로 갠 아크릴 물감을 동양화 붓으로 그린 것들이라 그 특유의 강렬한 색조와 동양화의 은은한 맛이 있다.
한글과 한자 등 우리의 문자에서 한국적 형태미를 찾아내고 이것을 자신의 색채미학과 결부시키는 일. 그의 표현대로 「한국성의 확장」이 그의 관심사.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미술행정가로서의 몫까지 욕심내고 있는 그이기에 올 한해도 그의 얼굴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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