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독립문제가 다시 부상하면서 금융감독체계의 개편 방향을 놓고 재경원 한은 등 관련 기관간에 해묵은 논쟁이 재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문제 못지않게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이다.중앙은행 독립문제는 88년과 95년에도 제기된 바 있으나 관련 이해당사기관과 여야의 시각차가 커 봉합된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때의 핵심쟁점도 금융감독기능을 누가 갖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앙은행 독립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온 나라를 파국의 지경으로 몰고온 한보사태가 그 배경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보사태가 터진 이유는 정경유착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대출에 대해 금융감독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감독원의 입지와 위상이 구조적으로 감독업무를 충분히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게 현실이다. 단적인 예로 은행감독원장은 대부분 정부출신이 맡아왔고 구성원은 모두 한은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감원장은 정부나 권력의 눈치를 살펴온 게 상례였고 나머지 직원들의 인사권이 독립성이 미흡한 한은에 맡겨진 상태에서 독립적인 감독업무를 기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한은이 중앙은행 독립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 보장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돈가치를 수호해 신용질서를 지키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현행대로 금융감독기능이 중앙은행에 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일리는 있으나 동의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도 그렇지만 감독기능은 정부의 고유기능인데다 한보사태가 보여주었듯이 현행 감독기능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재경원이 금융기관의 인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독기능도 재경원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금융감독체계는 독립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금융감독기관이 인사와 예산, 그리고 관련 이해 당사기관은 물론 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탈피해 감독과 검사라는 고유기능에만 충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출 때 제2, 제3의 한보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이 최근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대장성에서 금융감독기능을 떼어내 총리실 직속의 독립기관화하려는 움직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도 금융개혁차원에서 금융감독기관을 총리실 직속의 독립기관화하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대해 합리적 접근이라고 보고 이를 환영한다. 아울러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적 위상 확립과 함께 금융자율화가 명실상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금융감독기능이 엄정하게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불법이나 변칙금융은 발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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