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교수들의 정치 참여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연구에 골몰하여야 할 교수들이 현실정치에 기웃거려서야 되겠느냐면서 선비로서의 긍지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고, 반면에 나라가 위기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교수들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일제 치하에서 일부 지성인이 친일행각을 벌인 것이라든지 군사정권하에서 일부 교수가 어용교수가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교수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된 데에도 연유는 있다. 그러나 어용교수라는 말은 지금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에 대해 아직도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정치참여의 한계 내지 당위성이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나도 한때 난세의 선비정신이란 현실에서 은둔하고 음풍영월하며 학문에만 전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지만, 현실을 외면한 은둔적 태도란 붓을 꺾을만한 시대적 상황 아래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학문적 태도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동양학문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유학에서도 사회현실을 중시하였다. 공자도 맹자도 퇴계도 율곡도 모두 한결같이 현실 참여주의자들이었다. 전후 서양 철학계를 풍미하고 있는 프래그머티즘도 역시 현실에서 유용한 것을 학문적 덕목으로 삼고 있다.
얼마전에 서울대 경제학부의 배무기 교수가 중앙노동위 위원장으로 갈때 낸 휴직원이 교수회의에서 한 표차로 부결되어 끝내 사표를 내고 대학을 떠났다. 나는 이러한 결정은 공무휴직제를 신설한 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교수가 배교수 뿐이어서 연구와 강의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지만 이러한 흑백논리는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배교수가 없는 1년간은 시간강사를 쓰면 될 것이고 대학원 강의는 배교수에게 계속 맡겨도 되었을 것이다. 배교수는 1년후 현실에서 얻은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학교에 돌아와 더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회과학에 관한한 현실을 도외시한 학문이란 있을 수 없다.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에 오래 봉직한 교수도 안식년을 이용하여 외국대학에 가서 책을 뒤지는 것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자기의 전공을 살려 실무에 나가서 생생한 경험과 산 지식을 구비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사회로 보나 학교로 보나 유익하다.
이웃간에 담을 높이 쌓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과 일반 사회 사이에도 장벽을 높이 쌓고 서로를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다. 학문과 학문간에도 학제간의 연구가 보다 현실성 있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는 것처럼, 학교와 일반 사회에서도 서로간에 장벽을 허물고 협력의 장을 넓혀 나가야 한다. 선진국이 되겠다는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에서 다들 하고 있는 것을 못할 이유가 없다.<서울대 교수·법학>서울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