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 담으려한 작은 그릇’/엄청난 사회적 질타에 탈진상태 빠진듯청문회에서 진실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리라는 전제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답변내용의 진위여부보다는 답변태도나 증인들의 심리상태 등 주변적인 것들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박경식씨의 들뜨고 과대망상적인 표현이나 박태중씨의 포커페이스가 인구에 회자되고, 진실을 파헤치고 사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 것은 매스컴이 갖고 있는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증인들과 김현철씨가 보이는 태도는 몇가지 심리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박경식씨는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벌이는 경조증(hypomania)일 가능성이 많고, 박태중씨는 양심이나 죄의식이 부족한 기회주의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김현철씨는 비교적 이미지 메이킹이라든가 대중을 직접 마주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을 구할 인력이 많기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철저히 계산된 후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현이나 태도 등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마도 그동안 자신이 스스로 갖고 있는 능력이상의 일에 관여해온데다 그에 따른 사회적 질타가 엄청나 이미 탈진상태에 이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김현철씨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동안의 억울한 감정을 일시에 보상받고 싶었을 수도 있다. 사실그는 아버지 때문에 그동안의 삶을 상당부분 희생당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한을 아버지의 권력으로 상쇄해 보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의 미숙함에서 비롯됐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인도 아닌 젊은 아마추어가 시대착오적인 가족주의적 가치관으로 나라운영이라는 큰 일을 망치도록 방치한 정치권의 잘못도 물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지도자라도 어딘가 약한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대부분의 실패는 거의 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본래 그릇이 작은 지도자가 갑자기 큰 물에 나가 주위사람들에게서 분에 넘치는 들림을 당할때 그의 판단력은 흐려질 수 밖에 없다. 김현철씨와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잘못들도 물론 단죄해야겠으나 그런일을 방지하지 못한 법과 제도적 장치의 미비, 또 공과 사를 구별못하는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전근대적인 의식도 이 기회에 완전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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