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슈베르트가 태어난지 200년이면서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되는 해다. 브람스가 슈베르트보다 거의 두 배를 살아 생애의 길이는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 일생 독신으로 지내며 음악에만 몰두했고, 또 그 많은 작품의 대부분이 독일어권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사실 올해가 아니라도 어느 콘서트홀 치고 그들의 음악이 연주 안되는 해가 거의 없겠지만 올해의 연주를 아무래도 의미있게 듣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의 명연주나 새 연주의 기록을 정리한 음반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반드시 상업주의적 시각에서만 볼 것은 아니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두 사람의 음악이 수용되는 패턴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음반으로는 우리나라 음악애호가들이 둘 다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콘서트홀 연주에서는 분명 브람스가 더 인기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나라의 일반적 콘서트홀 분위기에 브람스 쪽이 더 적절한 것이 이유다. 브람스도 수 많은 실내악과 가곡을 썼지만 큰 규모의 곡에서 단연 브람스가 슈베르트보다 앞선다. 브람스의 4개 교향곡이 자주 연주될 뿐 아니라 피아노협주곡 2곡, 바이올린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역시 그 인기가 다른 협주곡들에 뒤지지 않는다.
슈베르트는 그렇지 않다. 잘 알려진 교향곡이 두 세 곡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편성이 작다. 이런 곡들은 작은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때 제맛이 난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대편성을 선호하고 또 티켓을 많이 팔아야 하는 곳에서는 슈베르트가 연주될 기회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슈베르트의 곡들은 처음부터 공개연주를 염두에 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슈베르트를 잘 연주하는 사람을 콘서트홀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은 그의 음악의 본질이 외향적인 연주보다 내면적인 연주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비슈베르트적」인 한국의 나날은 음악회를 가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교통지옥을 누비며 간신히 콘서트홀에 도착해 헐레벌떡 홀 안에 들어서면 연주 도중에도 휴대폰과 호출기 소리가 들린다(사실 이런 것은 어느 음악에도 맞는 것이 아니지만).
바람과 시냇물에 흘려버리듯 쓰여진, 고독했던 음유시인 슈베르트의 음악을 이곳에서 올바로 들으려면 언제쯤이 될지,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것인지….<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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