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장차 한보비리사건 처리방안의 하나로 소위 국면전환을 위해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 자금의 공개를 검토중이라는 얘기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여야간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대선자금에 대해 누차 공개를 촉구해 왔던 우리로서는 공개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공개방법으로서 막연히 외형적인 규모만을 밝혀서는 안된다. 어느 곳, 누구로부터 각기 얼마의 자금지원을 받았고 또 이를 어떻게 썼는가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할 것이다.국민들은 역대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13, 14대 대통령선거 역시 예외없이 막대한 자금이 뿌려진 돈잔치였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14대 대선때 여당의 자금운용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라 하겠다. 즉 당시 대선때 출처불명의 엄청난 자금이 소요됐음에도 김대통령은 당선후 어느 누구로부터 일체의 자금지원을 받지 않았고 오직 법정경비한도내에서만 썼다고 강조하여 국민을 의아하게 한 것이다. 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한 바 있었고 노씨의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김영삼 후보에게도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의혹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92년 대선때 중앙선관위가 공시한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은 367억78만7,000원이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 당선자인 김대통령은 한도액의 77.6%인 284억8,000만원을, 김대중 후보는 207억1,800만원을 썼다고 선관위에 신고했지만 이를 믿는 국민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후 비자금 수사때 노 전대통령의 아들이 김영삼 후보에게 「쓸만큼 주었다」고 의미있는 말을 한데다 이번 한보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치권에 뿌린 검은 자금으로 보아 거액의 대선자금을 지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증폭되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한보사건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이른바 고비용선거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대선자금의 공개를 검토할 것이라는 취지는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대선자금은 구성이 매우 복잡하여 이를 완전공개하는데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여당의 대선자금은 국고보조금 후원금 등 합법적인 자금 외에 혹시나 노 전대통령이 지원한 자금과 재벌들이 낸 자금 등을 생각할 수 있고 또 이의 모금도 후보 자신이 한 것과 각 고위참모 특히 민주산악회, 나사본, 청년조직 등이 받았을지 모를 자금 등으로 대별되고 사용처도 제 각각이어서 이를 세부적으로 취합, 공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청와대의 공개검토는 선거제도개선과 함께 김대통령임기내에 이 문제를 해소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으나 김대중 총재측은 20억원+α설을 겨냥한 물귀신작전이 아닌가 하며 경계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선자금공개는 자칫 정국을 뒤흔들고 선거분위기를 바꿀지 모를 뇌관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모금과 사용의 구체적인 완전공개만이 국면전환과 제도개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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