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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일만에 전격 진압/페루 일 대사관저 인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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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일만에 전격 진압/페루 일 대사관저 인질극

입력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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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외신=종합】 페루 정부는 22일 하오 3시30분(한국시간 23일 새벽 5시30분) 좌익반군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게릴라들이 지난 4개월여동안 인질극을 벌여온 리마의 일본 대사관저에 특수부대를 투입, 반군 전원을 사살하고 아오키 모리히사(청목성구) 페루주재 일본대사 등 인질 71명을 구출했다.이로써 지난해 12월17일 일왕 생일파티가 열리던 일본 대사관저에 MRTA 게릴라들이 난입하면서 시작된 인질극은 1백27일만에 막을 내렸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진압작전 종료직후 대사관저 밖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MRTA게릴라 14명 전원을 사살했으며 이 과정에서 특수부대원 2명과 인질 72명중 카를로스 히우스티 대법관이 숨지고 프란시스코 투델라 외무장관 등 2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전광석화 18분’

침투에서 인질 구출까지 18분간의 「전광석화」같은 작전이었다.

22일 하오 3시20분(한국시간 23일 상오 5시20분)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게릴라들이 72명의 인질을 붙잡고 있는 페루 수도 리마의 일본대사관저 위로 경찰헬기 한대가 낮게 날았다. 가을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실내 축구를 즐기던 인질범들은 헬기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늘상 있어온 정찰활동 때문인가, 인질극을 벌인지 127일째 협상을 통한 평화 해결가능성이 커진데 따른 방심 탓인가.

10분 뒤인 하오 3시30분. 방탄조끼를 입고 자동화기로 무장한 140여명의 페루 특수대원들이 관저 현관과 뒷문, 옥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페루 고대 유적의 이름에서 따온 「차빈데완탈」이라 명명된 진압작전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5곳에 폭탄을 터뜨리며 관저로 진입했다. 우선 리셉션홀에서 축구를 하던 주범 네스토르 세르파를 비롯, 인질범 6명이 쓰러졌다. 특수대원들의 기습은 수주전부터 비밀리에 판 200m길이의 지하터널을 통해서 가능했다. 이 「전격전」에 앞서 협상팀이 인질범들과 관저앞 민가에서 협상을 벌이며 「연막작전」을 펴기도 했다. 또 작전 돌입 10분전 인질들에게 이 사실이 「통보」돼 인질들은 관저 2층으로 대피했다.

특수대원들은 옥상에 지름 50㎝가량의 구멍을 내고 인질범들을 향해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수도관에 설치한 도청장치를 통해 사전 인질범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특수대원들 앞에서 인질범들은 제대로 응사조차 못하고 쓰러졌다. 34분. 폭발로 인한 버섯구름모양의 연기와 불꽃이 관저 밖으로 쏟아져 나오며 옥상으로 탈출한 인질들은 특수대원들의 손에 이끌려 속속 탈출했다. 작전개시 18분만인 하오 3시48분. 특수대원들이 2명의 소녀 게릴라를 포함, 인질범 14명 전원의 사살을 확인한 뒤 옥상에 걸려있던 반군 깃발을 끌어내림으로써 작전을 종료했다. 하오 4시5분께 현장에서 작전을 총지휘하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은 진압이 끝난직후 방탄복을 입고 대사관내로 입성, 특수부대원들과 국가를 합창했다.<권대익 기자>

◎인질들 작전 10분전에 알아

○…인질들은 구출작전 개시 10분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고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난 호르헤 구마시오 볼리비아 대사가 23일 밝혔다.

구마시오 대사는 TV회견에서 『작전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 수 있는 여러가지 통신방법이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질중 유일하게 숨진 카를로스 히우스티 대법관은 특공대원에게 구조된 뒤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전 종료후 방탄조끼를 입은 후지모리 대통령이 나타나면서 127일간 긴장과 공포에 휩싸여 있던 일본대사관저는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그는 관저앞에서 즉석 회견을 갖고 『게릴라들이 20일 의사들의 방문을 주 1회로 제한하겠다고 밝혀 이번 작전을 감행키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오키 모리히사 일본대사는 『구출작전이 개시됐을 때 거의 죽을 뻔한 상황이었으나 누군가 매트리스로 머리를 감싸주고 젖은 타월을 건네줘 연기에 질식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 총리 곧 페루 방문 의사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일본총리는 이날 페루정부가 인질구출 작전을 벌일 것임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러나 『일본인 인질 24명 전원이 무사하다』며 『후지모리 대통령과 페루정부에 사의를 전달하기 위해 조만간 페루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리마 외신="종합·도쿄=박영기" 특파원>

◎후지모리 ‘뚝심’ 또 한번 진가

『그에게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강공만이 그의 방식이다』

알베르토 후지모리(58) 페루 대통령의 전 부인 수산나 히구치는 후지모리 대통령이 방탄복을 입고 진두지휘한 인질 구출작전이 성공리에 끝나자 이같이 평했다. 국민사이에서 「치노체트(동양계의 독재자)」로 불리는 후지모리의 뚝심이 또 한차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그는 부모가 일본 구마모토(태본)현 출신인 일본 이민 2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핸디캡에도 후지모리는 90년 대선에서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의 선택에는 그가 인종·지역갈등과 부패로 거덜난 경제를 살리고 잇단 쿠데타와 좌익반군 준동으로 극에 달한 사회 불안을 종식시켜줄 것이라는 바람이 깃들여 있었다. 그가 일본계이므로 「부국」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도 깔려 있었다.

그는 이 기대에 부응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농업부문 보조금철폐 등 과감한 시장경제개혁을 단행, 취임 첫해 7,000%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를 10%대로 낮추고 성장률 12.9%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또한 마약범죄단과 「빛나는 길」을 비롯한 반군 조직을 와해시키며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도 가져와 페루를 「남미의 모범국가」반열에 올려놨다.

그러나 그의 강경일변책은 숱한 「그늘」도 만들어 냈다. 정치 민주화와 심화된 경제 불균형의 조속한 해결이 후지모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배국남 기자>

◎실보다 득/국내외 위기관리능력 과시

페루 인질사태가 127일만에 막을 내렸다. 수도 리마의 한복판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저에서 벌어졌던 이번 사태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정부에 시련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준 사건이었다. 즉 후지모리 대통령의 개발독재 일변도 정책에 대한 타당성 논란과 그의 위기 관리능력을 국내외적으로 함께 부각시킨 시험대였다. 따라서 인질 구출작전은 후지모리에게는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는 이 승부수를 멋들어지게 성공시켰다.

이 때문에 후지모리정부는 이번 인질사태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우선 지난해 3선 출마를 가능케 한 법안 통과로 고조됐던 국민적 불만을 아우르는 계기가 된 점이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안 나왔지만 41%이하로 추락했던 그의 인기도가 예전의 70∼80%대를 회복할 전망이다. 더욱이 자신의 장기집권 계획에 불만을 품은 고위장성들을 숙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군부와의 틈새도 작전 성공에 따라 봉합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후지모리의 「사무라이」식 경제개혁과 사회 안정 정책 추진에 군부의 강력한 지지는 절대적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최대후원국인 일본과 미국의 신임을 더욱 두텁게 한 점이다. 당사국이기도 한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총리는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한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시했다. 또 페루를 남미 좌익이념 확산방지의 보루로 삼아온 미국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반군측에 있다며 후지모리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시했다. 이는 외국자본의 유입을 통한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중인 후지모리의 「성장 드라이브」에 추진력을 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윤석민 기자>

◎MRTA 사실상 붕괴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은 페루의 친쿠바계 소규모 좌익 반군단체. 18세기 말 스페인 통치에 맞서 민중봉기를 주도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후계자 투팍 아마루 2세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따 84년 결성됐다.

공산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MRTA는 도시게릴라전에 중점을 둬 주로 은행강도, 요인 납치·살해 등의 테러를 저질렀다. 규모나 명성에서 최대 반군조직인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에 비할 바 못되지만 군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다고 알려졌다.

MRTA는 후지모리 대통령이 「반군과의 전쟁」을 선언, 소탕에 나선 뒤 92년 지도자 빅토르 폴라이 캄포스가 체포되면서 급격히 약화했다. 폴라이의 뒤를 이은 네스토르 세르파 카르톨리니는 「침묵을 깨고」라고 명명한 이번 인질극을 통해 폴라이 등 조직원 440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조직재건을 꿈꿨으나 끝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MRTA 간부들 대부분이 옥중에 있고 이번 사건으로 핵심조직원이 전원 사살됨으로써 MRTA는 사실상 완전붕괴됐다고 분석했다.<이희정 기자>

□페루 인질사건 일지

▲96.12.17. 아키히토(명인) 일왕 생일 축하파티중이던 페루 일본대사관저에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소속 무장게릴라 난입 점거.

▲12.18. MRTA, 투옥된 동료 440명의 석방 요구.

▲12.21. 후지모리, 강경진압 방침 표명.

▲12.22. 페루정부와 관련없는 인질 225명 추가석방.

▲12.28. 정부측 협상대표 반군과 첫 접촉.

▲97.1.1. 인질수 72명으로 감소.

▲1.15. MRTA, 사태 종식위한 협상 참여 동의.

▲2.11. 정부와 MRTA 협상 시작.

▲3.3. 쿠바, 인질범에 망명처 제공 용의 표명.

▲3.4. MRTA, 제3국 망명 거부.

▲3.12. 정부와 MRTA 협상 결렬.

▲4.21. MRTA 지도자 세르파, 『동료 석방 요구 변함없다』 천명.

▲4.22. 페루 군경 대사관저 진입, 무력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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