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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YMCA 떠난 전대련 전 회장(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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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YMCA 떠난 전대련 전 회장(한국인터뷰)

입력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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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Y맨’ 조금도 후회없어요/대학재학중 ‘고교생 지도’로 첫 인연/시대변혁 청년운동 선도 자부/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 퇴임 실감안나전대련(65) 서울YMCA(기독청년회) 회장이 지난 18일 김수규 새 회장에게 바톤을 넘기고 33년간 정든 일터를 떠났다. 64년 교육부 간사로 서울YMCA와 첫 인연을 맺은 그는 83년 사령탑인 총무(현재의 회장)에 취임한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회장을 4연임하며 권위주의 체제의 외풍과 시민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 위기를 슬기롭게 넘겨왔다. 이름뿐인 장이 아니라 일선을 누비는 일꾼으로 행동해 온 그를 만나 한국 청년운동의 현주소와 「YMCA맨」으로서의 지난날에 대해 들어본다.

□대담: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 YMCA에만 33년간 봉직, 말 그대로 「Y맨(YMCA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든 일터를 떠난 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21일) 처음 아내와 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기분이 묘하더군요.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33년간 밤낮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혹 사고나 없을까」 마음을 졸이며 지내서인지 일단은 마음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조금 시간을 가진후 「Y맨」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울YMCA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대학(연세대 신학과 철학과)을 다니는동안 폐결핵을 얻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어서 저도 반찬이 간장뿐인 열악한 상황에서 자취생활을 하느라 몸을 상했거든요. 소일거리 삼아 「하이와이클럽」(고교생을 위한 YMCA프로그램)을 지도했는데 정식 직원이 되라는 제의가 왔어요. 그후 일선 간사로 시작해서 33년을 YMCA와 함께 했는데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쑥스런 얘기지만 다시 태어나도 「Y맨」이 될겁니다』

―1903년 황성기독청년회로 출범한 YMCA는 우리 근·현대사와 호흡을 같이 해온 가장 역사가 오랜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과연 YMCA가 창설이념에 걸맞게 젊은이들의 의식과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십니까.

『저도 늘 반문해온 일입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노인 한분이 흥분해서 뛰어들어왔습니다. 그는 대뜸 「도대체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따졌습니다. YMCA빌딩(종로2가)앞 버스정류장에서 담배 피우는 소년을 보고 「어린 사람이 이러면 되느냐」고 나무랐는데 오히려 「당신이 뭔데 간섭이냐」며 대들어 봉변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으러 왔다는 겁니다. 사실 「막가파」얘기를 들으면 우리가 해온 일이 뭔가하고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YMCA가 있었기에 이 만큼이라도 젊은이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YMCA의 역할도 변해 왔습니다. 오늘의 YMCA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과정을 들려주십시오.

『창설당시에는 개화파 청년들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했습니다. 한 예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사진 제화 인쇄 목수 등 직업교육을 시켰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산실역할을 했고 60∼7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한몫을 했지요. 70년대 이후에는 시민운동에 비중을 두었는데 73년에 시작한 「양곡은행사업」, 80년대 중반에 벌인 「외채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자구운동」 등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최근에는 쓰레기 줄이기, 한강 살리기 등 환경·소비자운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YMCA는 창설이래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적 젊은이들을 싸안고 시대를 변혁시키는데 힘이 되도록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재임중의 공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80년대 중반 소비절약운동과 국산품쓰기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외채가 국민총생산의 50%에 달하고 사회에 향락분위기가 넘칠 때였지요. 국산 타이어 쓰기, 양담배 안피우기, 헌종이 모으기 등을 펼쳤습니다. 우리가 고관들의 승용차 타이어 실태를 파악하려고 나서니까 그 분들이 앞다퉈 국산타이어로 교체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도 그래야겠지만 YMCA는 생활과 밀착한데서 운동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시죠.

『70, 80년대 사회적으로 민주화의 욕구가 높아갈 때 우리 내부에서도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많은 갈등이 있었지요. 그런 속에서 저는 성경에 나오는 「뱀같은 지혜」로 어려움을 헤쳐왔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중반 「시민논단」에서 「소 파동」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고위층의 인척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정보기관에서 클레임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시비를 거는 그 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제가 나서서 논단을 취소시켰습니다. 안팎에서 항의가 많았지만 저는 「우리에게는 YMCA를 지킬 책임도 있다」며 회원들을 설득했습니다. YMCA는 조직이고 조직은 급진적이어서는 결코 지켜지지 않거든요』

―33년을 일관되게 일을 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일요일 운전을 하며 딴 생각을 하다가 영업용 택시를 뒤에서 받은 적이 있습니다. 택시기사가 허리를 싸쥐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며 명함을 건네주고 전액배상하겠다고 했지요. 그날 밤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사고를 당한 기사였는데 「사실은 떼를 좀 쓰고 싶었는데 좋은 일 하시는 분이어서 떼도 못쓰고 야단났습니다」며 웃는거예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상담실을 통해 산재보상을 받은 사람이 YMCA에 성금을 내겠다는 거예요. 자기도 어려운데 우리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게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돈으로 당신 곁의 어려운 이들을 도우세요. 그것이 바로 Y의 정신입니다」고 설득해서 돌려 보냈습니다. 이렇게 소박한 마음들과 만날때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었습니다』

―시민단체가 수십개를 헤아리게 됐습니다. 대부분이 환경·소비자운동을 하고 있어 단체간에 역할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요즘 시민단체의 역할과 앞으로 YMCA가 가야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민단체는 많아도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목소리 큰 일에만 경쟁적으로 매달리죠. 90년대 들어 급성장한 몇몇 단체에 비해 YMCA활동이 크게 돋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YMCA는 분명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남이 하려고 나서지는 않지만 사회에는 꼭 필요한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YMCA가 모든 시대적 요구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가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의식을 높이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14년간 한 단체의 장으로 지내자면 어려움을 이기는 생활철학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소개해 주시죠.

『매일 날씨가 좋으면 오히려 메말라서 사막이 되고 맙니다. 비바람은 귀찮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새싹이 돋습니다. 소임이 무엇인가 되뇌이면서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은 온다는 겁니다』

□약력

▲1932년 4월20일 경기 김포 출생 ▲56년 연세대 신학과 졸 ▲58년 연세대 철학과 졸 ▲64년 서울YMCA 교육부간사 ▲76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졸 ▲〃 대한기독교 감리회 목사 안수 ▲77년∼현재 서대문 중앙교회 목사 ▲80년 서울 YMCA 사무처장 ▲81년 〃 부총무 ▲83년 〃 회장 ▲83년∼현재 평화통일정책 자문위원 ▲84년 대한YMCA 총무협의회 회장 ▲84년 미 센터너리대 명예문학박사 ▲85년 국민훈장 동백장 ▲85년∼현재 세계YMCA 대도시협의회 실행위원 ▲86년∼현재 아시아 YMCA 정의평화위원 ▲93∼96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96년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부회장 ▲MRA(도덕재무장운동)한국지구 도덕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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