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후보마다 과학기술 중요성 역설/구체적 정책추진선 뒷전 밀려 ‘흐지부지’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근본적인 치유책을 논의한다. 규제완화를 논의하기도 하고 인프라의 부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재벌중심의 경제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또 하나의 지적이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확보이다. 지난 대선때에도 대통령후보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21세기에는 정보와 기술에 대한 국가간의 치열한 경쟁이 가속화할 것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인적자원뿐이고 부존자원을 갖고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정부도 2010년까지 과학기술에 있어서 G7국가에 들어간다고 하고, 이를 위해 GNP의 5%까지 과학기술투자를 확대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의지가 외국의 관찰자에게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왜 구체적인 정책추진에 있어서는 상징적인 구호에 그치고 마는가? 왜 총론에는 모두 인정을 하면서도 각론에 들어서면 구체적인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문민정부가 들어선후 4년간 과학기술처장관이 다섯번이나 바뀌었다. 장관 가운데는 과학기술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국가경쟁력을 위해 산업기술력을 육성한다고 했다가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중간수준의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고,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과학을 육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책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과학기술육성에 대한 관료들간의 정책조정이 안이루어지고, 예산집행 및 인사관리의 자율성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책구조를 가진 곳에서는 역시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과기처장관을 지낸 최형섭씨는 7년반동안 자리를 지킴으로써 역대 최장수장관으로 기록돼 있다. 초대 KIST소장이기도 했던 최장관은 박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하에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과정에서 과학기술육성의 기초를 만든 것이다. 산업기술의 기반이 취약했던 60년대에 월남전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박대통령은 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을 요청했다고 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민간으로 기술을 효율적으로 이전하려면 중간창구역할을 할 국가연구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KIST의 건설현장이었던 홍릉에는 박대통령이 매달 들러 인부들에게 막걸리값을 직접 전달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KIST가 관료들의 통제하에 들지 못하도록 재단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국회에서 통과된 KIST법을 실행하기도 전에 최소장의 건의로 개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단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이사장이 필요했는데 박대통령은 직접 사재를 털어넣고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과학자들을 초빙하기 위해 호화급 아파트와 국립대 교수의 3배에 달하는 급료를 제공하고 외국기준의 의료보험을 적용시켰다고 한다. 연구과정에 대한 감독보다는 연구결과를 평가하고 예산배정도 사전에 행정부처의 심의를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해주었다.
고도경제성장과정에서 KIST가 산업기술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외에도 대덕연구단지 조성계획, 과학기술원 설립과 당시의 안보상황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병역특례제도의 실시 등은 과학기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당시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왜 우리는 그와 같은 정책을 갖지 못하는가? 정책상황이 변했기 때문만인가? 아무리 좋은 정책안을 제시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정책구조에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그토록 어렵다던 금융실명제도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상징적 구호에서는 최우선인 과학기술이 정치적 고려에서는 최하위가 되는 한 과학기술의 육성은 요원하다.
대학생때는 유신체제와 박대통령을 그토록 반대했는데 이제 대학교수가 되어 박대통령 신화창조에 일조를 하는 허탈함과 역사의 아이러니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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