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의심받는중 해외여행 어떻게/유출위험불구 자필서명 서한 전달/안기부·노동법 지지 편지 작성 배경/대사관 외출 경호원 따돌릴 수 있나/북,단 5일만에 망명 인정 납득안가황장엽 비서가 베이징(북경)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지 67일만에 서울에 도착했으나 그의 망명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문점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북한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의문점들은 황장엽의 망명동기, 최근 사상을 의심받고 있던 상황에서 외국여행이 가능했던 점, 베이징에서의 망명과정, 중재자에게 미리 건네줬다는 편지와 내용상의 모순들, 북한이 전례없이 신속하게 망명을 인정하고 망명일정에 훼방을 놓지 않은 점 등에 집약되고 있다.
황장엽은 함께 망명한 심복 김덕홍을 통해 96년 11월부터 4종류의 편지를 중재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방을 신뢰하더라도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가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편지를 남한측 인사에게 건네준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게 북한인사들을 자주 접해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더욱이 황장엽의 말대로 한국 정부 깊숙한 곳에 간첩들이 박혀있다는 상황에서 편지를 써줬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안기부법과 로동법을 개선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좋은 일이다』 『안기부를 강화해야 한다』 등 강력한 여당건설 및 안기부 강화를 주장한 점과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노동법 개정을 지지한 점 등 「남한 인민」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여당의 입지 강화를 독려한 내용 등 편지작성 배경에 의구심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황장엽은 편지에서 자신이 곧 숙청당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와 같은 거물은 일선에서 후퇴시키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원로로 대접하기 때문에 황이 북한 또는 주체사상을 버렸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황장엽은 또 2월12일 상오 베이징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 가지고 곧 오겠다』며 김덕홍과 함께 북한대사관 숙소를 나와 르두안(일단)공원을 따라 걷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한국총영사관으로 향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북한전문가들은 황장엽과 같은 거물이 대사관 밖을 나갈 때는 반드시 벤츠 등 관용차와 함께 경호원을 붙여주는게 관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그동안 북한이 「트집형 외교」를 펴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진드기처럼 사소한 문구나 절차등을 문제삼아 지루하게 끄는 외교행태를 일삼아 왔던 북한이 황비서 망명의 각 과정마다 충분히 방해공작을 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5일만에 망명을 인정한다고 발표하고 그 다음에는 전혀 훼방을 놓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정부가 황비서의 제3국 경유지를 자유진영인 필리핀으로 택하게 된데 대해서도 한마디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황장엽의 한국행이 늦어진 것은 중국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늦췄던 것이지 북한이 중국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게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런 점이 망명사건을 지켜본 전문가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중 하나다.
건국대 김갑철(정치학과) 교수는 『그동안 황비서의 망명과정을 지켜봤으나 북한 정권과 우리 정부의 자세에서 석연치않은 부분이 있다』며 『그의 망명의도와 배경이 명백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그의 언행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박정규 기자>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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