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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비서/최영집 건축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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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비서/최영집 건축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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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부모가 정해지고 그 첫번째의 만남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만다. 능력과 성격, 교육의 기회까지. 「부모가 반팔자」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그러나 인생에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만남도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깊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만났건, 뜨거운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만났건 간에 사랑은 사람의 생을 크게 바꿔놓기도 한다. 감동이 있는 만남은 그만큼 강한 힘을 발휘한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긴장과 격무의 연속이어서 비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직원들도 중요하지만 비서만큼 사무실 분위기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전문성 못지않게 총명함과 부지런함을 요한다. 또한 여성의 본능적인 슬기로움이 기대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비서와의 만남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 못지않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그 만남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얼마전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여비서는 놀랍게도 열흘 출근에 아흐레가 지각이고 하루는 아예 결근이었다. 업무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하루 종일 전화로 수다떨고 퇴근시간에 맞춰 칼같이 퇴근한다. 이것이 신세대의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아마 제일 먼저 출근하여 주변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꽃도 꽂으며 밝게 인사하던 선배 비서들이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보이지 않는 축복에 싸여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철없는 비서 한사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능력이 안되면 스스로 바꿔 나갈 수 있는 성실한 자세라도 있으면 좋겠다. 자신은 생각지 않고 좋은 조건만 찾아 헤매는 딱한 나그네가 아니라 현실 속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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