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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비 망명길 67일 어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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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비 망명길 67일 어떤 생활

입력
1997.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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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갈 수 있나” 걱정의 나날/비선 바기오 체류 2∼3일만에 포트 막사이사이로 옮겨/4시40분 기상 명상·집필하며 소일… 생일파티는 사양불안과 긴장, 우려로 점철된 67일이었다. 황장엽 비서가 20일 서울 땅을 밟자마자 『과연 서울에 도착할 수 있겠는지가 늘 걱정이었다』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황비서 망명생활의 전기는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된 필리핀 체류. 베이징(북경)생활의 억압된 분위기를 벗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변보호를 위해 첫번째 체류지였던 산악휴양지 바기오로부터 숙소를 옮기는 곤욕을 치렀지만 담담히 이를 받아들였다. 황비서는 바기오가 언론에 노출되자 바기오 체류 2∼3일만에 마닐라 북부 120㎞ 지점인 포트 막사이사이로 옮겨져 이곳에서 줄곧 머물렀다. 포트 막사이사이는 날씨가 비교적 선선하고 군교육시설이 있어 보안이 용이 한 곳이다. 황비서는 20일 새벽 헬기를 이용해 포트 막사이사이에서 마닐라 근교의 빌라모르 공군기지로 가 특별기에 탑승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황비서는 보통 아침 4시40분께 기상해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뒤에는 곧바로 산책에 나서 동행한 우리측 관계자에게 국제정세, 남북문제, 철학, 역사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식견을 펼쳐보였다. 가끔 『학교다닐 때 미술과 체육을 못해 일 등을 못했다』는 등의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도 보였다. 베이징에서는 아예 숙소밖으로 나올 수 조차 없었다. 베이징에서 할 수 있었던 건강유지방법은 맨손체조와 명상이 고작이었다.

황비서는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도 한식요리사가 만들어주는 식사를 제공받았다. 식사후 황비서는 후식으로 포도를 즐겨먹었다.

황비서가 필리핀에서 주력한 활동은 집필과 독서.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집필해 놓은 논문을 고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국은 우리 학자가 저술한 북한 및 한국관련 연구서를 황비서에게 수시로 제공했다. 황비서는 특히 취침전 동화책을 읽는 습관이 있어 우리측은 15권으로 된 성인용 한국동화집과 「어린 왕자」 등을 건네 주었다.

황비서가 베이징에 있는 동안 우리측은 식사를 은수저로 검사하는 등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2월21일부터는 아예 요리사를 공관에 상주시켰다. 황비서는 밥을 반공기 정도밖에 먹지 않았고 간식으로 양갱을 좋아해 이를 특별히 공수해 오기도 했다. 2월17일 74회 생일에 우리측이 파티를 베풀어 주려하자 그는 『북한에 두고온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며 이를 사양했다.<권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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