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활엽수 최대 자생지 관광개발에 곳곳 훼손/좁쌀사마귀·혹란 등 희귀동식물도 절멸위기국내 야생 동·식물 서식지가 개발바람에 밀려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 생물종의 다양성이 새로운 국력의 지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서식지 파괴는 생태계에 대한 「한국적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취재팀은 최근 전북대 생태탐사팀(팀장 김철환 박사)과 함께 보길도의 생태조사를 통해 서식지 파괴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는 제주도와 더불어 국내 상록활엽수의 최대 자생지인 동시에 흑비둘기, 참나무하늘소, 좁쌀사마귀, 큰조롱박먼지벌레, 끈끈이주걱, 혹란 등 각종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이 늘고 개발바람이 불면서 동·식물 서식환경이 악화해 일부 동·식물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보길도는 자생 상록활엽수림의 북방한계선으로 섬 전역에 각종 상록활엽수가 분포해 있다. 그러나 도로와 가옥, 관광객의 증가로 생육환경이 크게 나빠졌고 특히 천연기념물 40호와 338호인 예송리 상록수림과 예작도 감탕나무숲은 심각한 훼손을 겪고 있었다.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까마귀쪽나무 동백나무 상동나무 사스레피나무 다정큼나무 등 15종 내외의 상록수로 이뤄진 예송리 상록수림은 「길이 740m, 너비 30m」라는 안내문과는 달리 너비가 10여m에 불과했고 그나마 절반은 해송으로 덮여 있었다. 숲 중간의 도로가 상록수림을 끊었고 숲속 곳곳에 통행로와 콘크리트 축대, 양식용 용수관, 대형 배수로 등이 마구 설치돼 있었다. 또 곳곳에 비닐과 스티로폼 등 생활쓰레기와 양식용 폐자재가 널려 있었다.
적자봉 능선의 상록수림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용리 큰길재 부근의 상록수림은 무분별한 벌채로 열매를 맺은 큰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키 1∼2m의 어린 나무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철환 박사는 『정상인 적자봉으로 올라 갈수록 나무들 키가 크고 밀도도 높아 고도가 낮은 지역의 인위적 훼손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자봉 중턱의 광나무 군락지도 수백그루가 잘려 나가거나 말라 죽었다. 베어 낸 그루터기 주변에는 염소 배설물이 남아있어 염소 사육을 위해 나무를 벤 것으로 보였다. 우리나라 고유수종으로 제주도와 보길도에만 자생하는 황칠나무도 어린 묘목만 자라고 있을 뿐이었다. 적자봉 정상의 국내 최대 섬회양목 군락지는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상태가 양호했으나 능선에 자생하는 혹란, 병아리난초, 붉은사철란 등 희귀란은 마구 캐어져 절멸위기에 놓여 있었다. 보길초등학교 부근과 부용리 습지에서 자생하는 희귀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끈끈이귀개 통발 등은 한 포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보길도는 좁쌀사마귀와 참나무하늘소 청띠제비나비 등 희귀곤충들의 서식처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번 탐사에서 도서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쇳빛부전나비가 발견되기도 했으나 82년 보고된 희귀종인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발견되지 않았고 과거 자주 출현했던 반디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82년 보고된 섬지방의 특산조류인 흑비둘기는 열매가 먹이인 후박나무의 벌채와 밀렵으로 격감했다. 부용리와 부황리 일대 개천의 가재와 민물 엽새우도 크게 줄어 들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북대 농대 김태흥 교수는 『수질이 2급수 이하로 떨어져 새우 등 수중생물과 희귀 곤충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이젠 한반도에서 영원히 보지못할 그 동물,그 식물들
「멸종」 판정을 내리려면 장기간 서식지에서 발견된 기록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멸종 판정에 소요되는 시간 기준이 확정돼 있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있어 최종적인 판정에는 많은 시일이 걸린다.
환경부는 지난해 「96 환경백서」를 통해 호랑이(포유류) 파초일엽 물솔 매화마름(식물) 원앙사촌(조류) 서호납줄갱이(어류) 등 6종이 멸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파초일엽의 서식이 확인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인정한 6종 외에도 많은 생물종이 이미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서식지가 파괴된데다 돈을 노린 남획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포유류 가운데서는 호랑이 외에도 늑대와 붉은박쥐가 이미 사라졌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수십년간 발견된 기록이 없고 서식 조건이 까다로워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수하늘소의 경우 93년 서식지인 광릉수목원에서 마지막 유충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성장 가능성이 희박해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대 생물학과 권용정 교수는 『장수하늘소 표본이 일부 수집가들 사이에 1마리에 700만원 넘게 거래되고 있다』면서 『대기오염과 남획이 장수하늘소 멸종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수원시 서호에만 서식했던 서호납줄갱이는 1935년 이후 채집된 기록이 전혀 없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표본 하나만이 남아 있다. 동자개과 어류에 속하는 종어도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과 한강하류에만 살던 종어는 별미로 꼽혀 치어까지 남획돼 자취를 감춰 버렸다.
경희대 생물학과 윤무부 교수 등 조류전문가들은 텃새인 황새 따오기 양비둘기가 이미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질오염과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가 주원인. 윤교수는 『과거 전국적으로 분포했던 텃새들이 깨끗한 환경을 찾아 도서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러나 멀리 날지 못하는 새들은 서식지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매시간 3종의 생물이 지구서 사라진다
『시간마다 3종, 날마다 74종, 해마다 2만7,000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 전 하바드대 교수는 저서 「생명의 다양성」에서 지구생물의 멸종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생물종의 보고인 열대우림지역이 1초에 축구장 1개 넓이로 줄어 들면서 온갖 희귀 동·식물들이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다.
현재 파악된 지구상의 생물은 140여만종. 이 가운데 포유류는 총 4,327종의 25%인 1,096종이 멸종위기를 맞았고 169종은 오래지 않아 멸종할 「지극히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최근 분석했다. 포유류 26개 목 가운데 24개 목이 생존위협을 받고 있으며 코끼리, 곰, 늑대, 고릴라, 코뿔소 등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곰은 8종중 중국과 몽고에 서식하는 갈색곰과 반달가슴곰, 말레이시아 태양곰, 인도 느림보곰, 남미 안경곰 등 5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국제동식물조사위 보고서가 나와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다. 곰 쓸개와 발바닥을 노린 밀렵꾼들의 남획이 주요인인 것은 물론이다.
유라시아와 북미대륙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늑대도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급격히 개체수가 줄고 있으며 미국 애팔래치아산맥에 살던 붉은 늑대는 이미 멸종했다. 미국은 독립이후 목축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연방정부가 나서 총, 덫, 독약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늑대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로 인한 생태계의 이상을 심각하게 깨닫고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 73년. 이때 제정된 멸종위기종자법에 따라 늑대는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IUCN은 파충류, 양서류 및 어류의 4분의 1도 방치될 경우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류 가운데서는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어가 엄청난 남획으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IUCN에 따르면 상어지느러미, 간유(스쿠알렌), 고기, 가죽 등을 얻기 위해 연간 1억마리가 포획되고 있다. 상어의 멸종은 해양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바다의 청소부」라는 별명을 가진 상어의 급감은 다른 어종의 이상 팽창을 불러 먹이사슬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유성식 기자>유성식>
◎전문가 기고/이병훈 전북대 교수·한국생물다양성협의회장/‘자연붕괴’ 방치할 것인가
얼마전 지리산 반달가슴곰 구출작전이 나라안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황소개구리 소탕작전으로 또 다시 소란하다. 모두가 사후약방문격이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어찌보면 발전과 진보일 수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희망과 기대를 다시 품어본다.
이제까지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굵직한 환경단체들이 주로 문제삼은 것은 낙동강 페놀 방류나 쓰레기 문제 등 「발등의 불」에 국한됐다. 당장 생명이나 생활에 지장이 없는 자연보전이나 야생동물 멸종문제는 뒷전이었던 게 사실이다. 늦었지만 그런데까지 관심이 미치는 것만도 고무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만8,000여종의 동·식물이 보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어디에 얼마나 살고있고 그 가운데 몇종이 절멸위기를 맞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 정부기관과 민간단체에서 보호대상종으로 약 180종을 꼽고 있으나 이 또한 일부 생물종 가운데서 지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숱한 개발과 개간, 매립, 오염으로 생물이 어떤 빠르기로 사라지고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보호대상종 각각에 대해서도 필요한 서식지 면적과 기타 생태계 조건, 먹이의 양과 질, 적응해 살아 나갈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 정도와 개체수 등에 대해 실제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생물종별 「호적 표본」은 물론 멸종위기 생물을 표본으로라도 모아둔 기관이 없다. 그래서 현황조사도 모니터링도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필요한 자료 대부분이 멀리 런던, 파리, 워싱턴, 뉴욕, 도쿄(동경)등지에 흩어져 있어 우리 후손은 이땅에 어떤 생물이 살았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게 돼있다.
이렇게 모르는 것과 없는 것이 많은 것은 무엇보다 투자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기초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적절한 보전대책을 수립할 수는 없다. 이런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생물의 멸종문제는 계속될 것이며 어느때인가 걷잡을 수 없는 자연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그래서 생물다양성 보전이 중요한 것이다.
대책은 없을까? 우선 대증요법에서 벗어나 응급처치와 원인제거에 동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자연연구와 보전의 중심기관인 국립자연사박물관과 국립생물다양성센터를 세워 전자는 국가자연유산과 천연기념물의 보존·연구 및 사회교육기관으로, 후자는 각종 생태계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증거표본의 보존·연구 및 생물다양성협약 이행의 전담기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로 「단기효과」를 기준으로 한 재정지원에서 벗어나 「장기효과, 삶의 질, 생명존중」에 비중을 둔 새로운 투자정책이 필요하다. 그 돈을 기초정보의 생산자인 대학과 연구소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과학기술처는 응용과학 분야 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과 관련한 분류학, 생태학, 진화생물학 등 순수기초과학 분야에도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관료나 기업가, 학생 등 국민전체가 이땅의 환경 및 생물다양성 보전 문제와 자신의 관련성을 깊이 반성하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내탓 운동」은 생태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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