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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노래를 듣자(음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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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노래를 듣자(음악노트)

입력
1997.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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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다투어 핀다. 벚꽃, 개나리, 목련, 철쭉…. 신이 내린 선의의 경쟁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덕수궁 뜰과 예술의전당 광장엔 꽃들 사이로 새 봄처럼 희망에 부푼 신랑 신부의 물결이 넘친다.음악사에서 기념할 만한 사랑의 화신으로 슈만과 클라라를 꼽는다. 장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법정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혼에 성공한 슈만은 결혼 전날 신부 클라라에게 아름다운 가곡집을 선사했다. 괴테, 뤼케르트, 바이런, 무어, 하이네 등의 시로 이뤄진 26곡의 모음 「미르테의 꽃」이 그것이다. 미르테는 향기높은 흰색의 꽃으로 신부의 치장에 쓰이며 순결을 의미한다. 이 가곡집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도나무」와 「연꽃」이 들어있는데 미풍에 흔들리는 사랑의 속삭임과 달밤에 꿈꾸듯 고즈넉한 선율이 화음에 싸여있다.

열렬한 사랑이 창작과 결합되어 슈만은 결혼한 1840년 한 해에 1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고 이를 가리켜 슈만의 「가곡의 해」라 한다. 이밖에 슈만의 대표적 가곡집으로는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연가곡」 등이 있다. 결혼 전까지 작곡가로서 슈만의 초기활동은 피아노에 치중하고 있는데 특유의 미감과 서정성, 민요적인 친근감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피아노작품에는 문학과 결합된 향기높은 곡들이 많아서 피아니스트라면 어김없이 슈만을 사랑한다고 한다.

14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는 꽃소식을 전하듯 마산에서 올라온 피아니스트 황정선이 슈만의 곡만으로 무대를 꾸몄다. 「아베그변주곡」 「어린이의 정경」 「판타지」 「아라베스크」 등 명곡들로 밀도높은 서정성을 표출, 청중의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자극만이 문화로 느껴지는 과장성과 안방 드라마처럼 편의성에만 길들여진 오늘의 감성에 슈만의 음악은 내면성을 추구하는 예술언어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청춘남녀들이 봄을 노래하거나 꽃망울 쳐다볼 겨를도 없이 기념촬영에만 분주한 모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영혼에 남는 그림이란 외향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다. 감동이란 미세한 부드러움 속에 감추어진 저녁노을의 황홀감과도 같다. 여러 사건으로 하도 어수선해 꽃들이 못내 부끄러워 할 서울의 봄, 진정 우리를 위안하고 희망을 주는 것은 봄꽃들이다. 꽃을 보자. 꽃의 노래를 듣자. 슈만과 클라라의 봄처럼.<탁계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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