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작업 하나를 끝냈다. 그 작업은 나를 오랫동안 녹초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게 했다. 바로 대산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서정인씨의 소설 「달궁」을 불어로 번역한 것이다. 1년반 넘게 두 명의 불문학자와 합심해 완수한 이 일은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경험이었다.내게는 모험이었던 이 일에 관여하게 된 과정부터 고백해야겠다. 본래 이 일은 나의 발의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혼자서 한국소설을 번역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한국어도 자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한양대 불어불문학과의 김경희 이인숙 교수가 대산재단의 번역지원사업 공고를 보고 나를 설득했다.
두 분은 나와 오랫동안 만나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학작품을 선택, 20페이지를 번역한 후 신청서류와 함께 제출해야 했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원서류 제출 마감일 바로 전날 밤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세명은 방안에 모여 앉아 작품선택과 번역방식에 대해 밤새도록 토론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우리 셋은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우리보다 앞서 제출한 서류가 두툼하게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밤새의 피로가 갑자기 밀려오며 낙담의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세명 모두 소설번역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였기 때문에 뽑힐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서류를 내놓고 셋은 『Au revoir(또 만나요)』라는 막연한 인사말을 던지며 헤어졌다. 그리고 여름휴가가 다가왔고 우리는 각자의 생활일선으로 돌아갔다. 몇주 후 그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대산재단으로부터 장학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삼총사」는 그때부터 주말마다 만났다. 본래 소설읽기와 쓰기를 좋아한 나로서는 두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김으로써 더욱 힘이 났다.
우리는 무사히 「달궁」 번역을 마치자 이번에는 문예진흥원이 주관하는 장학금을 받아 현길언씨의 소설 「회색도시」 번역에 나섰다. 한차례의 경험을 통해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번역속도도 빨라졌다. 우리는 더 좋은 표현, 더 나은 어휘를 고르기 위한 토론을 하면서 한국과 프랑스문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나는 우리가 번역한 소설이 하루빨리 많은 프랑스어권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국독자들에게는 한국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데 실망하기에 앞서 「달궁」이나 「회색도시」를 읽고 한국소설가들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를 바란다.<프랑스인>프랑스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