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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격증 ‘사고 팝니다’/무면허가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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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격증 ‘사고 팝니다’/무면허가 판친다

입력
199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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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전과 4범 사무장이 의사였다니…/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알았다/조무사가 간호사 노릇/늙은 원장은 얼굴마담인 것을 사무장이 잡혀갔어도 병원은 간판만 바꾼채 새 얼굴마담을 고용/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경기 파주시 조리면 등원1리 조성현(36·환경 미화원)씨는 6개월째 시름에 잠겨있다. 마당에는 개나리를 비롯한 봄꽃이 제각각 화사하게 피었지만 조씨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갓 5개월 된 아들의 해맑고 사랑스러운 웃음조차 마음 편히 대할 수가 없다. 왜 저렇게 귀여운 아들을 두고 아내는 딴세상에 간 건지, 엄마 얼굴도 모르는 저 아이는 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지난해 11월13일 하오 아내(당시 26세)와 함께 금촌동 S의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그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늦장가를 들어 첫아이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내도 건강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드디어 밤 10시께 진통이 왔다. 촉진제를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가 터졌다. 그러나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14일 새벽 2시께 간호사를 깨웠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며 기다렸으나 아침 9시가 다 되도록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원장 K(73)씨가 나타나 『아이 심장박동이 약해 위험할 것 같다.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겠다』고 서둘렀다. 『왜 이제서야 수술을 하느냐』고 조씨가 따지고 들었다. 『초음파 진단기가 작동이 안돼 자연분만을 해야 할 지 제왕절개를 해야 할 지 몰랐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수술실에는 원장과 의사 간호사 경리아가씨 등 4명이 들어갔다. 『아이가 잘못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초조한 시간이 2시간여 흘렀을까. 원장은 『수술은 잘됐다』며 수술실을 나섰다. 아들이었다. 가슴을 졸이던 조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갓 태어난 아들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조씨의 할머니 이재연(80)씨는 『오래 살다 보니 떡두꺼비 같은 증손자까지 보게 됐다』며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다행히 산모도 건강해 보였다. 출산한 날부터 밥을 먹을 정도로 회복속도도 빨랐다. 그런데 사흘째인 16일 갑자기 속이 더부룩하다고 산모가 얼굴을 찌푸렸다. 열이 오르면서 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져 영 심상찮았다. 50대로 보이는 담당의사는 해열제 주사를 놓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구토증세와 현기증이 찾아왔다. 그래도 의사는 『먹은게 없어서 그렇다』며 영양제만 놓았다. 닷새째인 18일에는 몸을 떨더니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약기운 때문』이라며 산소 호흡기를 댔다. 조씨가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좋아지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아내는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 손발도 차가워졌지만 의사는 『맥박과 체온이 정상이니 산모가 잠자고 있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곧 산모의 눈동자가 뒤집히고 호흡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의사가 달려와 심장 압박을 했다. 이미 때는 늦었다. 아들을 낳은 기쁨도 잠시, 출산 닷새째인 18일 저녁 8시 아내는 눈을 감고는 다시는 뜨지 않았다. 남겨 놓은 것이라곤 「영빈」이라는 아들 이름 두자 뿐이었다.

조씨는 아내가 세상을 뜬 후에야 그동안 의사로 여겼던 사람이 병원사무장 안모(56)씨였고 간호사인 줄 알았던 사람은 사무장의 부인인 간호조무사 김모(43)씨임을 알게 됐다. 의사라고는 고령의 원장 뿐이었다. 또 원장은 사무장인 안씨가 병원을 열기 위해 고용한 「얼굴 원장」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가 남자 의사보다는 여의사가 좋겠다고 해 「여의사 진료」간판을 보고 병원을 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알고 보니 간호조무사 김씨가 여의사 노릇을 해왔다. 사무장 안씨는 무면허 의료행위 전과 4범이었다.

경찰에 원장과 사무장을 고발하자 의사노릇을 한 사무장 안모씨는 보건범죄에 관한 특별조치법위반으로 구속되고 원장은 불구속 처리됐다. 또 부검도 했다. 그러나 진료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아 사망 원인조차 명백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아직 재판계류중이다.

가난한 농촌총각 조씨는 95년 12월31일 어렵사리 조선족 동포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마땅한 배필을 찾지 못했던 그에게 중국 지린(길림)성에서 봉제사업을 하는 삼촌(44)의 소개로 맺어진 아내와의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아내는 낯선 생활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막일에 젖은 조씨에게 아내와의 단란한 시간은 꿈같은 행복이었다.

아내의 죽음을 중국의 처가에 연락은 했지만 처가 식구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처가식구들이 찾아 와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라며 망연자실했어요. 병석에 누워있는 장인은 가족들이 알리지 않아 아직까지 딸의 죽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내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동안 그는 일자리도 잃었다. 장례식을 치르느라 500만원의 빚도 져야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으나 흥이 나지 않았다. 이달초에야 마을 어른들의 주선으로 면사무소에서 환경미화원 자리를 얻었다. 『팔순의 증조할머니 품에 안긴 영빈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지금은 할머니라도 계시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될지…』

취재팀이 찾은 문제의 S의원은 병원이름이 Y의원으로, 원장은 젊은 여의사로 바뀌어져 있었다. 간호사는 없었고 사고당시 간호조무사였던 김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씨는 취재팀을 환자로 착각한 듯 원장실로 데려가 『무슨일로 오셨죠』라고 물었다. 취재팀이 신분을 밝히며 『진료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다』고 대답했다. 『밖에 성형수술도 한다고 써 놓았던데 누가 하죠』라는 질문에 김씨는 『외부에서 의사를 데려 와서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따로 만난 원장은 『전에 붙어 있던 것을 미처 떼내지 못했다』고 대답이 엇갈렸다. 확인 결과 새 원장인 K(27·여)씨는 지난해 의사면허를 땄고 지난 4일에야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았다. 실질적인 소유주는 여전히 안씨 부부이고 원장 K씨는 의사면허증을 빌려 주고 고용된 「얼굴 원장」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무자격 사회’/부실한 면허제도·관리와 도덕불감증이 결합

의사면허가 대여되고 건설면허가 웃돈에 팔린다. 간호조무사 자격이 간호사자격으로 둔갑하는 등 각종 자격증이 딱지처럼 거래된다. 무면허 의사의 처방에 사람이 죽고 무면허 건설업자가 지은 집이 무너져 내린다.

부실한 면허제도와 관리 부재, 면허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도덕 불감증이 우리사회를 무자격자가 판치는 「무자격 사회」로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인명과 직결되는 무면허의료 행위가 늘어나는데 대해 관계 전문가들은 『무면허의사는 대개 병원을 차릴 재정적 능력이 안되는 젊은 의사를 고용, 면허를 빌린 뒤 이들과 함께 실질적인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라며 『환자들이 종합병원으로만 몰려 의사들이 개인의원 개업을 기피하는 경향을 틈타 무면허 의사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갓 면허를 딴 의사입장에서도 많은 돈을 투자해 병원을 열기보다는 이미 들어서 있는 병원에 면허를 빌려주고 자신도 경력을 쌓으려 하기 때문에 무면허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인 줄 알면서도 함께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면허 한의사도 마찬가지다. 무면허 한의사를 집중 단속했던 검찰관계자는 『한의원이 몰려 있는 서울 K시장지역 한의원 10명중 3명은 면허를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약제기술은 있지만 자격이 없는 이들은 한의원을 차릴 재정적 능력이 안되는 젊은 한의사에게 면허를 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극히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업무만 해야 하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노릇을 하고 있는 개인의원도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의료사고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신현호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병원은 「입원환자 5인, 1일 외래환자 60인까지」 2명의 간호사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이 운영되려면 1일 최소 100명의 외래환자는 있어야 해 간호사가 3명은 돼야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간호사 인력 자체가 부족한데다 특히 개인의원에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간호조무사를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지요』

각종 면허대여 행위는 그동안 숱한 사회문제를 일으켜 왔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당국의 단속도 극히 형식적이어서 「걸리는 사람만 억울한」 꼴이 되고 있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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