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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비용구조 깨야 한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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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비용구조 깨야 한다(사설)

입력
1997.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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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당초에 이야기되던 것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그래도 설마했던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들은 부정부패의 척결을 최우선적인 과제의 하나로 설정한 문민정부 하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묻고 있다.우리는 문민정부의 정치인들이 과거에 비해 특별히 더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소의 의혹사건이 끊이지 않는데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첫째, 민주화에도 불구하고(어쩌면 민주화 때문에) 정치비용은 줄지 않고 있다. 정치 관련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고비용구조는 실제 여전하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돈이라도 받아챙길 유인이 상존하고 있다.

둘째, 정부의 각종 규제가 부패를 조장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특혜를 얻기 위한 뒷거래가 성하게 마련이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직접적으로는 관련 당사자들의 도덕성이 문제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수의 정치인과 관료가 경제생활의 사실상 모든 국면에 엄청난 통제력을 행사하는 제도와 관행에 그 원인이 있다.

물론 정치인들이 직접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우리나라를 실제로 끌어가고 있는 관료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 대가로 정치인들은 관료들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아울러 관료들의 경제에 대한 규제도 사실상 유지시킨다. 규제의 유지는 관료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탈규제는 바로 정치헌금 모집 능력의 상실을 의미할 뿐임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는 정경유착을 낳고 이것은 다시 정관유착을 낳아 총체적 뒷거래 상황을 빚는다.

더할 수 없는 국가적 수치라고 해야 할 이번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과감히 축소하여 시장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가 줄어들지 않는가고 묻고들 있지만 민주화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부패의 개연성을 오히려 증가시킨다. 권위주의 정권에 비해 정책과정이 사회의 특수이익에 노출되는 접점이 늘어나고 경쟁의 격화로 더 많은 정치자금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제도와 절차가 투명해지지 않으면 민주화 이후 부정과 부패는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중남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규제의 폐해는 정치적 부패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가 효율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비효율적인 기업은 도산하게 내버려 두는데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바로 이같은 「도산의 자유」를 박탈할 우려가 있다. 효율성이 아니라 연줄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해서는 경제난국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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