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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묘지,세번째 계곡,세번째 폭포’/전경린(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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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묘지,세번째 계곡,세번째 폭포’/전경린(소설평)

입력
1997.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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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잊어버린 늑대성전경린의 「세번째 묘지, 세번째 계곡, 세번째 폭포」(현대문학 4월호)는 근대소설의 리얼리즘이 회피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갖가지 은밀한 방법으로 소설의 허구적 현실에 틈입하는 마법의 세계를 대담하게 펼쳐보인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 언제든 정령으로 돌변할 준비가 되어있는 세계이며,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유리되어 어떤 원형적 삶을 사는 세계이다. 전경린이 그려낸 마법적 세계의 중심에는 늑대에서 변신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기 목숨을 구해준 숯장사와 마지 못해 혼인하여 아이 둘을 낳았지만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사납고 애절한 소리로 울부짖는다.

늑대에서 변신한 여자란 소재는 참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래의 괴기담에 흔할 뿐더러 현대 스릴러물에도 숱한 변형을 낳은 모티프다. 이러한 낡은 모티프가 여태 살아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의 마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여성의 신화, 즉 여성은 인간 문화에 억압당한 자연과 특별한 친연성이 있다는 신화이다. 야수와 인간의 양면을 지닌 여성상은 여성의 육체적, 감각적 실존 속에 자연이 그 섬뜩한 신비를 보존하고 있다는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경린의 단편 역시 이러한 신화적 관념의 각색이다. 그 플롯은 늑대-여자가 야생적 자유를 회복하려는 자신의 영혼과 「집」이라는 규정된 삶의 형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자유로운 실존과 세속적 사랑의 대립이다. 늑대―여자가 자신의 야수적 본성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가족을 사랑으로 수락하는 순간 그녀는 언젠가 찾아낸 「늑대의 길」을 잊어버리고마는 것이다. 그녀가 결국 집을 떠나리라는 암시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사랑과 자유의 대립은 도저한 비극성을 띠고 다가온다.

「염소를 모는 여자」같은 작품으로 이미 입증된 바와 같이, 전경린 소설은 격하다. 잔잔한 감정의 미풍도 그녀의 문체를 거치면 허리케인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뜨거운 정념의 열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녹여버리고 독자들을 저 두려운 낯설음(Das Unheimliche)속에 빠뜨린다. 「세번째 묘지…」의 마법적 세계는 아파트 단지에 검은 염소가 어슬렁거리는 장면에 비하면 그리 두렵지도 낯설지도 않다. 경험적 현실과의 관련을 처음부터 배제한 동화적 형식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전경린 소설의 기묘한 매력은 여전하다.<황종연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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