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북 기아 르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북 기아 르포

입력
1997.04.12 00:00
0 0

◎“먹을 풀조차 없다” 6·25때보다 더 고통/어린이들 영양실조로 성장 멈춰/급수시설 오염 설사병·장염 창궐/농토 날로 황폐 맨손 쟁기질까지미증유의 식량난을 겪고있는 북녘땅을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려온 북한당국은 최근 미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자를 초청해 현지의 참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신문의 바버라 슬라빈(여) 기자는 토니 홀 미 하원의원 일행과 함께 4일부터 사흘동안 평양, 안주, 신의주 등 여러 지역을 두루 살펴보고 돌아와 11일자에 장문의 르포기사를 게재했다. 한국일보의 제휴사인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독점제공한 슬라빈 기자의 「97 북한기행」을 요약한다.<편집자 주>

중국 접경의 압록강 부근 마을에 있는 한 고아원에는 9명의 어린 아이가 한 줄로 누워있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한 장의 털담요를 같이 덮고 있었다. 눈동자가 풀려있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나오고, 가슴은 심한 천식기침으로 떨리는 어린 아이들은 방치된 상태나 다름 없었다. 이들중 둘은 너무 작고 말라 신생아처럼 보였지만 고아원장은 「생후 6개월 짜리」라고 말했다. 아홉 아이의 어머니들은 모두 지난 겨울에 죽었는데, 여기있는 아이들도 곧 인구 2,300만의 이 궁핍한 나라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기아의 희생양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있는 북한 정부는 마침내 기아를 숨겨온 커튼을 걷어올리고 있다. 미국 기자에게 굶주림을 목격하도록 비자를 내준 것은 처음이라고 북한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토니 홀 하원의원(오하이오주·민주)이 이끄는 대표단에 끼어 수도 평양에서 북동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압록강 국경의 신의주까지 여행을 하며 곳곳에 들렀다.

외부 세계를 오랫동안 의심해온 북한체제가 마음을 바꾸게된 이 변화는 절망의 산물이다. 수만명이 굶주림이나 관련 질병으로 지난 몇해간 죽었고 수천 이상이 올 여름 아사 위기에 처해있다고 미국 정보통들은 말하고 있다. 북한은 2년동안 계속된 홍수, 냉전시대 동맹국들의 붕괴, 50년간의 집단농업 등이 중첩된 결과 황폐화해왔다.

사흘간의 체류중 미국으로부터온 우리 방문객들은 자이레나 소말리아에서 처럼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북한의 기아상태는 다른 나라들의 그것보다 난해하고 미묘하다. 북한은 자존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에 불과 몇달전까지만해도 식량지원을 구걸하는 대신 고통분담 차원에서 배급량을 줄여왔다.

그러나 북한사람들은 지난 2년동안 미국사람들이라면 거의 먹을 수 없을 정도의 풀뿌리 등으로 줄어든 배급량을 메꿔온 결과 생존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특혜가 주어지는 평양 이외 지역에서는 많은 가슴아픈 목불인견의 참상이 목격됐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안주시의 부시장인 고춘규는 『올해는 조국해방전쟁(한국전)때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안주시가 쌀을 마지막으로 배급한 것은 지난달 26일. 그는 언제 다시 쌀이 도착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고아원 원장은 수용된 원아들이 지난해의 절반수준인 40명으로 줄었다면서 『이는 영양부족에 따라 사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식량이 급해요. 쌀이 필요해요』라고 호소했다.

신의주 병원의 직원들은 환자용은 물론 의사들의 식량을 구하려 애를 쓰고있었다. 병원장은 5월까지 환자당 450g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의사들은 하루 100g의 식량밖에 배급받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이는 450칼로리에 불과하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체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1일 1,500칼로리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이 병원 원장도 지난해보다 사망자가 10∼15% 늘어났다고 시인했다. 그는 노약자와 어린이가 주로 희생됐다면서 예전에는 드물었던 결핵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함께 많은 환자들이 장염을 호소하고 있었다.

평양에 체류하는 유엔 직원들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유엔아동구호기금(UNICEF)에서 파견된 노르웨이인 루나 소어렌센씨는 지난주 평양에서 북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희천을 방문, 해골처럼 깡마르고 말을 잃은 아이들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곳 관리들은 8,800명의 7세이하 어린이중 3,400명이 영양실조로 성장이 중단됐으며, 750명은 눈에 띄게 영양부족이 심각한 상태이고 140명은 극히 위중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정권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6세이하의 북한 어린이 250만명에게 양식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버지타 칼그렌 WFP국장은 최근 북한에 대한 전세계의 식량지원을 기존의 두배인 20만톤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엔이 이같은 곡식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금을 모금한다해도 북한은 다음 추수가 시작되는 7월까지 최소 110만톤의 추가식량이 필요하다고 칼그렌은 말했다. 외국관리나 북한관리들은 영양실조로 약해진 북한 농부들이 곡식을 심거나 돌볼 기력조차 없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잇단 홍수로 토양상태가 최악인데다 주민이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물물교환용으로 남벌하는 바람에 올여름 또다시 홍수피해를 입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칼크렌은 올여름 장마때 물을 빨아들일 나무가 없을 정도로 야산이 황폐해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표단은 북한주민의 규율잡힌 태도와 금욕적이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농부들은 들판에서 씨를 뿌리면서 느린 동작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농기구가 없었으며 일부 들판에서는 황소가 낡아빠진 쟁기를 끌고 있었다. 다른 농부들은 손으로 개토작업을 했다. 평양―신의주간 고속도로변에서는 어린이들이 호미를 어깨에 둘러메고 겨우내 벌목한 야산에 나무를 심으러 가고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강인함과 적응력면에서 시골 염소를 닮았다. 북한 농촌에서는 얼마 되지않는 염소, 황소, 닭, 오리 등만을 볼 수 있다. 관리들은 지난 2년간 계속된 홍수로 대지가 점점 황폐해졌다고 우려했다.

북한 경제는 92년이후 급속히 기울고 있다. 이 시기는 북한과 교역해온 주요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때다. 북한은 10년전에도 그들이 섭취하는 음식에 단백질이 결핍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식량난 때문에 북한은 신세대의 체형이 기성세대보다 작은 몇몇 않되는 국가가 됐다.

그럼에도 북한 관리들은 여전히 북한이 2차대전 직후 남한과 분단된 이래 대약진(발전)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북한을 여행하는 것은 마치 타임캡슐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평양에는 비교적 넓은 도로가 있으며 김일성 동상 등 스탈린식의 거대한 건축물과 선동적인 구호가 담긴 대형 벽보가 곳곳에 있지만 자동차는 거의 구경할 수 없다. 평양 외곽의 농촌 사람들이 이번주 풀뿌리라도 찾기위해 야산을 누비는 동안, 비교적 유복한 도시 청소년들은 김일성 탄생 85주년 행사를 위해 집단체조를 연습했다.

빈곤함의 현장을 외부세계에 보여주는 것은 50년동안 주체사상을 자랑해 온 북한 정권으로서는 분명 고통스런 일이다. 세련된 북한 외교부 관리들은 『(외국)방문객들이 간절한 도움은 외면한 채 참담한 현장을 사진찍는데만 열중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관리들은 북한 정권이 주민을 먹여살리는 데 실패함에 따라 북한의 엄격한 사회주의 체제가 느슨해지고 있는 현장이 외부에 노출되고 있는데 불안해 했다. 인구 30만이 사는 신의주시에서는 곡물 배급소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몇몇 여성들이 노상에서 설탕과 집에서 만든 빵 등을 파는 장면이 목격됐다. 시관리 김숙현씨는 석유화학 공장들이 연료와 원자재 부족으로 폐쇄됨에 따라 여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중국인과 저임금 하청계약을 체결, 의류봉제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압록강변에서 중국이 20년전 자본주의 경제노선을 택한 이후 엄청나게 발전한 중국과 북한과의 격차에 놀라게 된다. 북한쪽에는 몇몇 사람들만이 폐허가 된 공원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공원내 놀이시설들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슬고 낡아 있었다. 반면 강건너 중국의 단둥(단동)시에는 초봄의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고층건물들이 마치 「부의 신기루」처럼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현재의 위기는 북한정부가 잘 이용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붐에 할 수 있는 변신의 기회, 또는 최소한 더이상의 고통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정일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추진하기로 결정했음은 분명하다. 북한은 엄청난 식량난에 자극받아 수년전만 하더라도 반혁명적 행위로 치부됐을 행동을 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주 초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4자회담 참석에 합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국전 당시의 실종미군 유해 발굴 및 리비아 등에 대한 미사일 수출문제 협상에도 참석하게된다. 이같은 개방조치는 아무리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미국을 침략자이자 호전적인 남한의 후원자라고 교육받아온 북한주민이 수용하기 힘든 일이다.<정리=신재민 워싱턴특파원>

◎미 국민 65% “대북원조 찬성”/구호단체 ‘월드비전’ 조사

미국민의 3분의 2가량은 미국정부가 북한 주민의 기아를 방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민간 구호단체인 월드 비전이 10일 밝혔다.

월드비전이 지난달말 1,000명의 미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 정부가 북한의 기아를 방지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응답이 64.6%였으며 23.5%가 반대, 11.9%가 무응답이었다.

이 조사에서는 또 전체 응답자의 78.9%가 북한의 기아에 관한 보도를 접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한편 월드비전은 『이번 조사결과는 미국민들이 북한내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워싱턴=홍선근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