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도 어린 새싹들이 초등학교의 문을 들어섰다. 호기심을 담뿍 담은 천진한 눈망울들은 그러나 50∼60명이 들어찬 콩나물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따뜻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갖은 보살핌 속에 자라는 오늘의 아이들은 선생님의 무관심을 못견뎌하고, 그런 아이들이 안타까운 학부모들은 촌지로 교사의 관심을 사려 한다.언론에서는 교육 비리에 대한 보도가 잇달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교사와 학부모간의 문제를 전체 교직사회의 일인양 침소봉대한다는 항의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비록 일부 교사와 학부모에 한정된 것일지라도 결코 눈감아 넘길 일은 아니다. 자녀교육에 대해 상의하고 싶어도 촌지없이는 담임교사를 방문할 용기를 못내는 것이 오늘날 많은 학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이제 촌지문제는 신뢰해야할 학부모·교사관계를 허무는 고질적 병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신학기 초등학교의 촌지 뿐이랴. 학급 환경정리, 소풍·스승의 날 교사에 대한 도시락 및 선물 등 뒷바라지, 특별활동 모임 지도교사에 대한 대접 역시 학부모들에게 심적·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1, 2년전부터 부교재값이 갑자기 올라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교재채택 사례비 문제로 광주지역 교사들이 무더기로 징계되었다.
또한 고등학교 3년 담임교사에 줄 진학지도 사례비 갹출도 학부모들 사이에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쥐꼬리만한 담임수당을 받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며 격무에 시달리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내 아이의 진학에 특별히 관심을 쏟아달라」며 갖다 주는 진학지도비를 거절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학부모에게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는 이런 사례비를 교육계의 비리가 아닌 스승에 대한 미덕이라며 눈감아야 하는 것일까.
교육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공립 초·중·고교에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닫혀있던 학교가 열리고 교장선생님, 학부모·교사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며 학교교육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촌지관행, 아이를 볼모로 잡혔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내는 찬조금 징수 관행들이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바른 의식을 가진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위원으로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찬조금을 징수하는데 앞장서는 재력있는 학부모들로 구성된다면 자율적 학교공동체를 세운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재정조달기구로 변질될 것이 분명하다. 교육개혁의 바람은 위에서만 불고 밑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아무리 돈으로 가득 찬 사과궤짝이 오가는 부패된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고 준비해가는 학교만큼은 맑고 투명한 곳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 먼저 선생님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동료교사들의 비리를 감싸고 두둔하며 일부 현상을 가지고 전체 교육계를 매도하지 말라고 강변하기 이전에 이를 인정하고 추방하려는 자정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이래야만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싹트고 우리 교육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최근 선생님들 사이에 촌지·채택료 안받기 등 자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교육비리를 없애고 학교를 민주화하려는 교사들 스스로의 움직임을 교육당국이 적극 격려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학부모들도 일그러진 의식을 깨치고 일어나 밑으로부터 시작되는 교사들의 맑은 학교 만들기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새봄 새학기,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싹들이 푸르고 무성한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열린 학교, 투명한 학교를 가꿔가는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장>참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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