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성묘길에 고양시 화정지구를 지나면서 길가의 신축 아파트 이름을 보고 가뭄끝의 단비 만큼이나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별빛마을」이란 이름이 높직한 아파트 벽에 적혀 있었다.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했더니 연달아 「달빛마을」 「은빛마을」 「옥빛마을」이란 아파트가 나타났다. 쳐다보기에도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총총히 들어선 고층아파트 숲의 삭막함과 몰개성함을 깨끗이 씻어주는 이름들이 아닌가. 이렇게 멋진 이름의 아파트 사람들은 마음씨도 고울 것같아 한번 살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고양시 덕양구청에 전화를 걸어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고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건축허가 당시 고양시에서 주민들에게 아파트 이름을 현상공모했는데, 한 중학생의 작품이 당선됐다는 설명이었다. 그 이름들을 지어낸 중학생의 마음도 별빛만큼 아름답지만, 좋은 이름을 지어 길이 남기려는 담당 공무원들의 발상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3주일 전에는 강원도에 갔다가 정 반대의 경험을 했다. 춘천에서 오봉산 고개를 넘어 양구방면으로 가는 도로변에 「방활사」란 팻말이 보였다. 한동안 그 뜻을 생각해 보았으나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 옆에 모래더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길에 뿌리는 모래라는 뜻의 방활사가 아닐까 짐작되었다. 마침 꽃샘추위 끝에 내린 눈으로 도로가 얼음판이 되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어떤 곳에는 「빙방사」라는 팻말이 서 있다. 빙판길을 방지하는 모래라는 뜻의 빙방사일까. 「적사장」이라 씌어있는 곳도 있다. 모래를 쌓아둔 곳이란 뜻의 적사장일 것이다.
작년 이맘때 제주도에 갔다가 한라산 횡단도로변에 「모래」라 써붙인 것을 보고 별빛마을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알기쉽고 간결한가. 길가에 쌓아둔 모래의 용도는 그렇게 난해한 말을 만들어 써붙이지 않아도 다 안다. 괴상망측하고 뜻 모를 말을 만들어 낸 공무원과 아파트 이름 현상모집을 생각해 낸 공무원의 얼굴을 비교해 보고 싶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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