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한 정치풍자화/71년 전시회장서 중정연행 고초석은 변종하(71) 화백은 최근 26년간 숨겨온 비밀 한가지를 털어놓았다. 71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던 대한미술협회전 전람회장에서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하룻동안 조사받고 나온 사실이다. 87년 쓰러져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두번의 자살을 시도하면서도 변화백은 부인에게까지도 이를 말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라기 보다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죽음과 같은 공포를 안겨준 원인제공자는 다름아닌 「돈키호테이후―독재자」라는 작품. 조사실에 끌려간 그는 『독재자는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박정희씨』라고 대답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항거였지만 남산어린이회관건립문제로 안면이 있었던 육영수(박대통령의 부인)씨의 도움으로 「다시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60년대 파리 체재 시절부터 집요하게 그려온 「돈키호테」시리즈의 막을 내리게 한 해프닝이었다. 변화백은 『고문은 없었지만 무척 위압적인 상황이었다.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고 회고했다.
변화백이 대표작으로 꼽는 「돈키호테이후―독재자」는 100호짜리 캔버스 두개를 잇대어 그린 200호 크기의 역작(324×130㎝). 텅빈 교실에서 목마를 타고 있는 피에로가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자기가 최고라고 뽐내는 모습을 그렸다. 군사독재정권을 특유의 풍자와 독설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그후 파리로 돌아가 「밤」시리즈를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행해지는 비리와 부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여전히 사회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또 90년대 들어 투병 중에 시작한 「자화상」연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따끔한 충고와 고언이 담긴 작품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알랭 주프르와는 올해초 서울 성북동 변화백의 화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를『칠레의 군사독재에 항거해 탈출한 거장 마타에 비유될 만큼 뛰어난 화가이자 정치비평가』로 추켜세우며 『「동키호테이후」시리즈 30여점을 모아 세계 7개 도시순회전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대구출신인 변화백은 일제의 학생징집을 피해 만주로 피신, 스승 서진달 화백의 주선으로 입학한 만주 신경미술학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직선적이면서 솔직한 성품은 야수파의 거친 선과 색채로 나타나면서 국전에서 특선과 부통령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두번째 파리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작품제작에 매달릴 무렵 소뇌 하부신경이 마비되는 중병으로 쓰러졌다. 마비된 손으로 한 일자 긋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한 그는 침상 옆에 화구를 두고 기어다니며 그린 작품으로 90, 95, 96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모음곡」과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를 화폭에 옮겼다. 앞으로 김소월 정지용 박두진, 헤르만 헤세의 시가 그림의 소재로 남아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하루 한끼 죽으로 연명하면서도 화필을 놓지않는 변화백은 『젊을 때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며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한 벌을 받고있는 것 같다』며 『내년중 성북동집을 개조해 들어서는 사설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보고 눈을 감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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