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혼란 야기 뉘우침없이 사업운운 아직도 재기 집착7일은 한보사태가 발생한 뒤 국민들의 울분이 가장 많이 쌓인 날일 것이다. 이날 국회 한보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특위 위원뿐 아니라 TV를 통해 증언을 지켜본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극대치로 높였다.
『기억이 안난다』 『답변할 수 없다』 『모른다…』
정씨는 10시간 가까운 청문회를 사실상 세 가지 답변만으로 버텼다. 두려움이 없는 듯한 그의 태도에 여야의원들이 무력해 보일 지경이었다.
세간의 평판을 뛰어넘는 「자물통 입」때문에 청문회는 한보사태의 진실에 한발짝도 다가설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청문회의 최소한의 존재 의미인 정씨의 반성을 촉구하는데도 이르지 못했다.
정씨는 한보사태로 야기된 혼란상황에 대한 뉘우침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우주에 음양의 이치가 있듯이 기업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다』고 강변하면서 한보그룹의 사회적 기여도를 설명하려 들기도 했다. 그가 장충동에 노인정을 기증한 사실등을 장황하게 말하자 청문회의장에는 한 때 격앙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의원들의 추궁에 대해서는 『그런 이자율로는 의원님이 사업을 해도 잘될 것』이라며 정면으로 면박을 가하기도 했다.
정씨는 그러면서도 재기를 위한 병적인 집착을 보였다.
그는 『구치소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업을 잘하는 것이 국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아연실색케 했다.
그는 수서사건과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을 이같은 배짱으로 넘겼다. 정씨는 이번 한보사태 이후에도 재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정씨가 시종 보인 태도는 이같은 재기를 위한 보신술이었다.
『무릎 꿇고 빌어도 용서할 수 없다』는 추궁에 대해서도 그는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 대해서는 답변할 의무가 없다는 법조항이 있다』며 태연히 받아넘겼다. 결국 정씨는 구치소에서 청문회에 대비하면서 『나를 감히 어떻게 하겠느냐』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이날 청문회는 정씨가 자신이 거머쥔 정보를 토대로 정치권과 국민을 협박하고 우롱하는 장소가 됐다. 한보사태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이 정총회장의 이날 증언으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유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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