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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동과 행복지수/이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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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동과 행복지수/이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화요세평)

입력
1997.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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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행복지수는 자연과 우주로 중심이 옮겨질때 보다 높아진다지고의 행복은 무심에서 나온다. 완전히 마음을 비울 때다. 그러나 무심은 별난 성인의 경계로 보통사람은 이루기 어렵다 한다. 성인은 이상적 인간상일 뿐이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평상심이 도라 하였다. 삼국유사를 보면 성인이 늘 저잣거리에서 범속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있다. 성인의 중심이 민심에 옮겨져 속세가 그대로 성역이 된 것이다. 그 비결은 민심이 탐욕의 중심을 비우고 지고의 무심이 되어 범성의 경계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흔히들 「인간중심」의 교육 경영 정책 등을 내세운다. 또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고도 말한다. 물론 인간을 위한다는 취지이며 자연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너무 중심이 되었기에 오히려 불행해진 일이 있으며, 「중심」이 이기적으로 작용하면 이웃과 생태계를 어렵게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인간도 지 수 화 풍 신식, 또는 이와 기 등으로 구성된 자연이다. 그런데 인간중심이란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의식해온 우리의 수승한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대립시키며, 나아가 자연 위에 군림하게 한다. 또한 생태계의 불안정을 초래했고 드디어 인류자존을 위해할 수도 있는 위기에 이르게 했다. 이젠 신을 탓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중심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운용에 있었다. 이미 유구한 동양의 전통에서는 일체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평등한 우주관이 있었으며, 인간중심의 바탕에는 지고하고 유일한 천심을 갖고 있었으나 그 중심을 운용함에 있어 협동과 절제를 통한 타자로의 중심이동이 두루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임을 가르쳤다. 군자에게 있어서는 민심이 천심이라 하여 중심을 민심에 두었으며 인간도 무위자연, 물물이 부처라 하여 중심을 타자와 자연에 옮겨 살아왔다. 그래야 군자가 행복하며, 인간이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단풍나무는 처음부터 단풍의 빛깔이 아니다. 가을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가장 아름다워진다. 서리 내리고 제 빛을 완전히 버릴때 가장 붉게 빛난다. 시절 인연이 그러하다.

휴머니즘과 인간중심은 그렇게 다르다.

어울려 존재하기에 중생이라 한다. 개인의 삶도, 일개의 물건도 중생이다. 한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 하였다. 생명계에 있어 중심은 무진하다. 신도 인간도 유일한 중심이 아니다.

무심이 지고의 행복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자기 중심을 비우면 영원한 시공이 투명하게 열리고, 만물이 자애롭고 화평하며 충돌하지 않으며 서로를 살리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대지를 적시되 「내가 대지를 적신다」는 생각이 없으며, 「이 땅은 더 많이, 저 숲은 더 적게…」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완전한 중심이동, 무심은 그래서 만물을 평등하게 하며 존엄하고 자유로우며 지극히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무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중심을 옮기는 일로써 행복해져 보자. 우정은 그 중심이 친구에게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가족이 보다 행복할 때는 중심이 나보다 아내와 자식, 남편과 어른에게 있을 때다. 나라가 보다 복된 것은 통치의 중심이 민생에 있을 때고, 성군이 그래서 행복하다. 성직자의 행복은 중생의 안심에 있다. 인류의 행복지수는 중심이 자연과 우주로 옮겨질 때 보다 높아진다.

중심이동과 행복지수는 그렇게 관계한다.

성인이 하는 일은 중생에게 기적이며 중생이 하는 일 또한 성인이 보면 기적같은 일이다. 범성이 동원이지만 성인은 중심을 중생에게 두고 중생은 자기에게 두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산사에 흐르는 물이 맑고 한없이 푸르다. 이 물은 그 어떠한 중심도 갖지 않고, 숲과 돌 그리고 하늘빛을 모두 담아 흐르기에 더욱 푸르고 아름답다. 중심을 비운 곳에 만물의 중심이 들어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심은 만덕의 근원이고 지복이다. 무상·무아의 길에 지복이 있다.

물은 자연히 그러하다. 인간은 의지로 자기중심을 버리고 행복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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