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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편지쓰기 공모/소설 ‘아버지’ 100만부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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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편지쓰기 공모/소설 ‘아버지’ 100만부 기념

입력
1997.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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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그이름/시댁식구에 흉잡힐까 딸 결혼식에도 못간채 홀로 술만마신 꼽추아버지/아버지 담배냄새를 갖고 가고싶다는 시한부인생 소녀/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들『엄마 아빠! 딱 한번만 부탁 드릴께요.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꼽추 등을 한 아버지를 둔 딸. 『그렇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서 행여나 흉잡힐까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하물며 꼽추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하객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오빠한테 「철썩」 소리가 나도록 뺨을 얻어맞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시집가는 딸이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 『걱정 말그래이. 요즈음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아파오니 내 그날은 식장에도 못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그라』하고 거짓말까지 했다.

상아빛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큰아버지 손을 잡고 결혼행진곡에 맞춰 첫발자욱을 뗀 딸은 그러나 「덩그러니 방에 홀로 남아 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 올리고는 오열을 참지 못했고 결혼식은 눈물바다가 됐다….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 판매 100만부 돌파에 맞춰 출판사 문이당이 공모한 「아버지에게 편지쓰기」에 보내온 김경연(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씨의 사연이다. 소설보다 더 눈물을 뿌리게 하는 사연. 신파가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생생한 실제 삶의 모습들이기에 더 진솔하게 와 닿는다.

김씨의 사연은 이어진다. 아이를 갖게 된 김씨는 입덧에 시달리며 친정음식을 그리워한다. 어느날 시댁 식구들과 나들이차 나서던 길에 동네 슈퍼마켓 근처에서 우연히 눈에 띈 아버지의 모습을 못본 채 지나쳤지만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저녁에 보따리 하나를 전해 준다.

그 속에는 『야야! 니 어미가 오려고 하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다. 배 곯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꼽추아버지는 임신한 딸의 시집 근처에 몰래 와서 청국장, 겉절이와 사투리 섞어 쓴 쪽지만 전해주고 간 것이다. 한 없는 아버지의 사랑.

소설 「아버지」는 그 문학성 논란, 최근의 표절 논란 등은 모두 차치하고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한 계기를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편지쓰기 행사에 온 편지는 모두 3,656통. 이중 예심과 본심을 거쳐 83편의 작품이 선정됐다. 김씨의 편지가 1등으로 뽑혔다. 당선작들은 5월초께 책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이다.

2등으로 뽑힌 김성은(서울 양천구 신정2동)씨는 화가인 아버지의 외도로 3남매가 멍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돌아가신 뒤 더 절절해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중학생 조혜진(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2동)양은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뒤에도 농삿일 걱정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함께 한편의 시를 썼다. 「얼어붙고, 눈 내리고, 바람 불고 간 들판에/ 아버지의 발자국이 성큼성큼 찍혀 들어가기 시작한다/ 바늘 하나 들지 않게 얼어붙었던 논이/ 아버지의 쟁기질에/ 겨우내 품어두었던 토실한 흙덩이를 내어놓는다」.

김해숙(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씨는 『사랑하는 의사 친구와 변호사 친구를 둔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은 그래도 행복했다. 우리같은 서민은 아무 대책없이 죽어가겠죠』라고 담담히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빠, 왜 나만 세상을 떠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건지. 난 아직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라며 시한부인생을 사는 듯한 10대 소녀 정모(경북 문경시 모전동)양은 『아버지에게서 풍기는 약한 담배냄새 배인 체취를 가지고 떠나 별이 되고 싶다』고 해 다시 눈물을 자아낸다.

본심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수많은 응모작과 감동적인 사연들을 통해, 소설 「아버지」는 문학에서의 대중성, 대중문학의 중심이동에 관한 의미를 새삼 환기시켜 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됐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주영씨도 『이번 편지쓰기 행사는 우리 가슴속, 기억속에만 묻혀있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 애정을 일으켜 세우고, 아버지에게 정당한 이름표를 달아준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며 한결같이 편지들에서 받은 감동을 토로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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